Ignite You & Your People 제4호: 성하(盛夏)의 나무
HIT 3101 / 최학수 / 2007-07-22
제가 자주 걷는 산책길에는 아파트 단지 답지 않게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7월에 들어서자 산책길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이 참 깊고 넓어졌습니다. 유실수들은 꽃이 핀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어느새 크고 작은 열매들을 맺고 있습니다. 감나무는 벌써 탁구공 만하게 열매를 키워놓았습니다. 늦게 잎과 꽃을 피웠던 대추나무도 그에 질세라 갓난아기 고추만한 대추알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습니다.
새봄부터 지금까지 소리 없이 조용하게 나무들이 성장해온 결과입니다. 어제와 오늘은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그러한 하루하루가 모여 이 여름, 놀라운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엊저녁 산책길에는 풀벌레 소리가 제 귀를 자극했습니다. 올해 들어 처음 듣는 풀벌레 소리였습니다. 가을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이 성하에 잠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숲 공부를 하는 벗과 얼마 전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나 : 나무들의 전체적인 좌우 균형을 보면 참 아름답고 신기해요. 그런데 나무줄기에서 뻗어 있는 가지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니 그 모습이 여간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네요. 줄기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자라지만, 그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은 옆으로 자라잖아요. 사람이 팔을 옆으로 뻗치고 평생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벗 : 가지들이 왜 그런 모습으로 뻗어나갈까요?
나 : ... 햇빛을 받기 위해서?
벗 : 맞아요.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나무는 위로 그리고 옆으로 성장하려고 애쓰지요. 그러니까 나무는 자신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햇빛을 얻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합성을 위해 나무가 들이는 수고이자 대가인 것이지요.
이제 산책길의 나무들에게서 푸르름과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치열함과 노고를 봅니다. 무심해보이는 저 나무 안에 쉼 없는 노동과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거둘 열매와 열매를 위한 수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올해 세웠던 목표와 계획들을 중간점검을 해봅니다. 어떤 것은 이루었고 또 어떤 것은 아직 생각에 머물고 있습니다. 일에 임하는 자세와 집중도가 눈에 띄게 변화했고 -스스로 참 대견합니다-, 몇 가지 고질적인 습관 - 이를테면 '미루기' - 은 여전히 제 에너지를 많이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또 휴가철로 들어서면서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기 쉬운 요즘, 묵묵하지만 치열하게 성장해가는 나무들을 보며, 저 자신을 다시 한 번 추슬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