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회를 바라보다가
HIT 983 / 정은실 / 2007-05-04
큰 아이와 둘째 아이의 학교 운동회에 다녀왔습니다.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여러 날을 연습한 무용, 단체경기, 개인달리기, 계주...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딱 고만큼의 나이만큼 자라난 아이들은 몇 번에 한 번씩 다가오는 자기들 차례가 오기까지 제각각의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자기 아이들의 순서가 되면 부모들은 카메라를 들고 나가 아이들을 에워싸고... 선생님들은 수시로 흐트러지는 아이들의 대열을 바로잡느라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 매달린 만국기, 쩌렁쩌렁 울리는 안내방송, 학교 앞에 늘어선 노점상인들, 먼지 나는 운동장... 변한 듯 변하지 않은 것이 학교 운동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수십 년 전의 내 운동회의 추억으로도 살짝 빠지기도 했다가, 내 아이들의 성장한 모습에 흐뭇해하기도 했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 운동회는 누구를 위한 운동회일까?', '운동회는 왜 할까?'
종목에 따라서 아이들은 흥겨워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운동회를 빌미로 만난 학부모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간만의 여유로운 만남의 시간을 즐기기도 했지만, 여러 날을 연습하고 애쓴 학교잔치에 걸맞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소리는 경쾌했지만 부채춤을 추는 대부분의 아이들의 표정은 활기가 없었고, 다른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먼지 나는 흙바닥에 앉아서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놀고 있는 하급학년들의 표정도 그리 신나지는 않았습니다. 내 아이가 참석하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하며 불편한 바닥에 앉아있는 부모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고,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수시로 재정렬을 시키는 선생님들의 표정도 그리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인지, 명확한 고객을 설정하고 의미 있는 목표를 설정한 운동회라면 지금보다 더 흥미롭게 사람들을 참여시켜야 할 텐데, 오늘 제가 본 운동회는 그냥 의례히 하니까 하는 활동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비단 아이들의 운동회에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냥 예전부터 하고 있었으니까 그대로 따라하는 일들, 그냥 옛날에도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나는 그대로 이렇게 지내겠다고 하는 생각들, 무엇 때문에 하는지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인지 생각하지 않아서 목적은 상실하고 수단 자체에 몰입하는 일들... 이런 것들이 바로 변화를 막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경험하며 변화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경험하고 변화하며 성장하는 자신을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 성장의 과정과 결과물이 타인과 사회에 대한 기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삶 속에서 자신이 준 것보다 자신이 받은 것이 훨씬 더 많은 우리가 가진 삶의 의무입니다. ... 오늘, 뭔가 한 가지를 좀 더 다르게 그리고 좀 더 의미 있게 시도해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