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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떠남과 한 만남

HIT 972 / 정은실 / 2007-05-01


 

제가 아는 어느 인연 깊은 분의 어머님이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나셔서 어제 그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대장암 말기로 보름 이상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셔서 가족들의 가슴 아픔이 컸습니다. 더욱이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신지 100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서 가족 분들의 슬픔이 더 커 보였습니다.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두려워하는 어머니에게 '내가 어머니 가시는 길을 끝까지 지켜드리겠다'고 약속한 그 분은 마지막 3박4일간을 호흡곤란과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머니 곁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고 하셨습니다. 83세의 어머니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하나하나 정리를 해가는 사이사이에 여러 차례 오래 오래 통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어머니 옆에서, 대신 해드릴 수 없는 고통 앞에서 그분은 어머니가 삶에서 해결하고 가셔야 할 것들을 다 정리하고 훌훌 떠나실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일을 접고 어머니와 함께 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의 어머니 또한 훌륭한 분이셔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고 가슴에 남은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점점 평온한 표정이 되어가셨다고 합니다. 마침내 다 털어내시자 그 힘든 호흡을 멈추고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얼굴에는 살짝 미소까지 어려 있어서 '정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맞나?'할 정도로 고운 모습이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불교신자셨고, 그 분은 종교가 없는 분이시고, 그 분의 형제들은 수녀분도 계시고 목사님도 계십니다. 서로의 종교는 달랐지만, 살아 생전 8남매를 키우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한 어머니가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실 수 있도록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과 행동으로 마지막 정리작업을 같이 도우셨다고 합니다.

그분을 통하여 그분 어머니의 마지막 며칠간의 모습과 그분이 어머니를 도우신 이야기를 들으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죽음을 통하여 삶의 가장 큰 통합이 일어난다는 것, ... 삶의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부여된 혹은 우리가 스스로 부여한 과제들을 잘 정합시켜간다면 죽음의 과정은 좀 더 가벼울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 ... 비록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으셨지만 그 고통과 싸우며 마지막 작업을 하신 한 훌륭한 어머니에 대한 찬탄, ... 어머니와의 헤어짐의 슬픔과 싸우며 어머니가 죽음과 직면하는 과정을 도운 그분에 대한 연민과 존경의 마음... 그리고 나는 과연 내 부모님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내 삶의 마지막에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 것인가를 오래 생각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회의, 수업, 강의, 문상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바빴던 하루였지만, 잠자리에서 한참을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 오늘 낮에, 학교에서, 결혼식을 나흘 앞둔 꽃 같은 후배와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25세의 나이에 동갑내기 신랑과 결혼하는 후배는 새로운 삶의 경험 앞에서 여러 가지 준비로 조금 지쳐보였지만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참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가계를 남편에게 맡겨야 하는지 자신이 맡아야 하는지, 집안일은 어떻게 분담해야 하는지, 공부와 결혼생활을 어떻게 병행해야 할지, ... 등등 이미 그 과정을 겪고 난 사람들에게는 아기자기하게 보이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민스러운 일상의 과제들을 앞에 두고 고민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 삶의 한 곳에서는 떠남과 종결이 있고 삶의 또 다른 한 곳에서는 만남과 시작이 있었습니다. 

새봄의 꽃들이 떠나고 5월의 신록과 5월의 꽃들로 가득한 요즈음에 저는 한 떠남을 보았고 한 만남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둘 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온전히 경험하고,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배운 바를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스스로 성장하고 타인의 성장을 도울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단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 것으로 경험하여야 합니다. 단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삶의 겉껍질만을 만지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느낄 때, 그것에 온전히 몰입할 때, 실제로 그 속에서 경험할 때, 단순하지만 깊은 삶의 진실들이 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에 몰입해있는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 물어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말이나 행동이 나의 마지막 말이나 행동이 되어도 좋으냐고 물으시던 또 한 분 스승의 목소리를 떠올려봅니다. 

                                                                                     - 아름다운 5월의 첫 날에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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