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숲 편지 180호 : 대추 한 알
HIT 513 / 정은실 / 2016-10-16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가랑비 내리는 골목길을 우산 쓰고 한 바퀴 돌다보니 어느 가게 앞에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원의 나무들이 제법 환한 빛깔로 울긋불긋합니다. 선선한 바람으로 찾아온 가을이 이제 빛깔로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대추가 올해도 어김없이 붉게 둥글어질 시간입니다.
가족톡방에는 지난주 일요일 함박웃음 머금고 결혼식 올린 조카의 감사인사가 올라와 있습니다. ‘좋은 날 다 같이 모여 축하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다 찾아뵙고 인사 드려야 하는데 내일부터 출근해야 해서 이렇게 감사인사 드립니다. 축복해 주신만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형님이 답글을 올리셨네요. ‘믿는다, 재우야. 서로 존중하며 배려하며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라. 모두가 지켜보고 있을 거다.’
바쁜 걸음 멈추고 문득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는 가을 주말 오후입니다. 지금의 나를 영글게 한 태풍과 천둥과 벼락, 무서리와 땡볕과 초승달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웃음과 눈물, 모든 사랑과 지혜, 그 너머 찾아온 지금 이 순간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