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숲 편지 178호 : 지금 그대 삶의 어느 시기를 어떻게 경험하고 ......
HIT 315 / 정은실 / 2016-07-03
대개의 생각들이란 일어났다 금세 스러지는데, 때로 어떤 생각은 오래 머물기도 합니다. 최근에 나에게 머무른 생각 하나는 며칠 전 큰 아이와의 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학 첫 학기를 마친 큰 아이와 둘이서 밥을 먹던 중이었습니다. 이야기 중에 방학 때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니까 알차게 잘 보내렴.’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언제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었나요? 늘 그 이야기를 들은 것 같네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니? 하긴 엄마가 자주 그렇게 말한 것 같구나.’하고 화제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는데, ‘정말 삶에서 중요한 시기가 언제지?’라는 질문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이의 말투가 살짝 까칠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도 중요한 때라고 아이를 설득하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라, 순수한 궁금함이 올라왔습니다. 일부러 생각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명상을 하면서도 불쑥 불쑥 올라올 정도로 말이지요.
오늘 온 식구가 모인 일요일 아침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러 날 계속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고, 그 생각이 큰 아이와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고. 그리고 생각해보니 엄마가 보기에는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기는 없는 것 같다고.
그 이야기에 큰 아이가, 자기 속마음을 말했습니다. ‘늘 중요한 시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자극이 점점 덜해져요. 정말 중요할 때 그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아빠는 ‘모든 때가 중요할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때는 있는 것 같네. 예를 들면, 초등학교 1학년 때가 3~4학년 때보다는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늘 지금은 중요한 때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았구나.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가족들에게도 자주 했구나. 나 자신에게는 그러한 생각이 삶의 순간순간에 몰입하는 힘이 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부담이 되고 그냥 엄마가 자주 하는 이야기로 흘러가버리기도 했구나. 스스로 돌아보게 도와주었어야했는데 그러려고 했지만 그것이 부족했구나.
사람이 성장해가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시기들이 있습니다. 잉태되는 순간, 탄생의 순간, 생후 3-4년, 수많은 첫 경험들과 그때 세상(중요한 사람들)으로부터 받는 반응,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열리는 때, 사회에 나오는 시기, 배우자의 선택과 결혼, 양육의 경험, 큰 병이나 실패 등의 고통을 경험할 때, 부모님을 먼저 보내드리는 때, 삶의 마지막 2년, 죽음의 순간......
각자의 삶의 목적과 경로에 따라 중요한 시기가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가는 당연히 조금씩 다르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때에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그 경험을 제대로 해석하며 배우는 것입니다. 일상에 명료하게 깨어있음이 중요한 이유이지요.
대화의 마지막에, 그 어느 때보다 귀 기울이고 있는 큰 아이에게는 이렇게만 담담히 말해주었습니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일 수 있기 때문에,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는 것 같아. 물론 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면 삶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겠지? 그렇지만 가끔은 한 번씩 네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지금은 내 삶에서 어떤 시기이지?’ ‘나는 내 삶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 거지?’ 그래서 너에게 ‘더’ 중요한 시기를, 그때 알아차리고, 그때를 잘 살면 좋겠어.“
이 글 읽고 있는 그대, 그대는 지금 그대 삶의 어느 시기를, 어떻게 경험하고 해석하며 진화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