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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숲 편지 169호 : 토요일에 만난 특별한 손님들, 가족 에니어그램 씨앗을 심다

HIT 426 / 정은실 / 2014-10-12

 

토요일이었던 어제 특별한 손님들이 집을 다녀갔습니다. 두 엄마와 세 아이들이 4시간 남짓 에니어그램 검사를 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직장에도 가정에도 무척 헌신적인 두 엄마는 몇 년 전 우리와 같이 경험했던 에니어그램으로 아이들의 학업과 진로에 도움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 본인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아이들과 찾아가도 되겠느냐는 문의를 지난달에 받았을 때 사실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세션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지 않고, 아이들에게 에니어그램을 잘못 적용할 경우의 위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염려와 함께 마음 한편으로는 엄마들과 아이들 간의 좋은 이해와 소통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뭔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경험이 일어날 것 같은 낯설지 않은 느낌에, 일이 다가오는 대로 경험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나게 된 어진, 하영, 도윤. 찾아오기로 한 세 아이들의 이름을 10월11일자 달력에 적어놓고 매일 한 번은 들여다봤던 것 같습니다. 그간 한 달 이상 주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 강의나 교재 제작 등을 하고 있는 상태라서 하루쯤 쉬고 싶은 생각이 가끔 났음에도 아이들과의 일정을 다음 달로 조정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처음 만나는 아이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쉬는 날인데, 엄마 손에 이끌려왔음이 분명한데, 쑥스러움 속에도 호기심이 담겨 있는 아이들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며 짧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많은 것을 전하려하지 않고 그룹코칭을 하듯이 편안히 이야기 나누며 진행을 하기는 했지만, 우리 스타일이 워낙 진지하니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 만도 했을 것인데, 세션 내내 아이들은 참 의젓하게 집중하며 자기 탐색을 했습니다(가장 어린 도윤이가 가끔 멍 때리기를 했지만. ^^).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자기 성격의 원형을 더 잘 찾아냈습니다. 자기 유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자신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받으며, 감추지 못하는 예쁜 웃음이 귀에까지 걸렸습니다. 고민을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용기 내어 자기 생각을 또렷또렷 말하기도 했습니다. 엄마의 성격을 거의 정확하게 찾아내서, 엄마를 즐겁게 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습니다. 같이 하지 않은 아빠와 형제들의 성격에 대해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어진, 하영, 도윤이는 부모의, (어제 엄마와 같이 참석을 한 것을 보면) 적어도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고, 엄마와 마음의 끈이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사춘기를 겪으며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기 스스로를 세워가며 꿈과 기대보다 더 큰 불안과 걱정을 안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믿음을 갖고 소통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도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4시간.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과 공간 동안 드러나는 마음들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문을 들어설 때보다 훨씬 더 밝은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에니어그램을 만난 지 올해로 15년째입니다. 많은 책, 많은 만남, 나와 타인의 변화에 대한 관찰,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 해 동안의 에니어그램 수련과정과 결과에서 힘을 얻어 에니어그램 기반의 강의와 코칭을 본격적으로 진행한지도 올해로 6년째입니다. 이렇게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 에니어그램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더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최근 1~2년 정도 파트너 교산과 집중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어제의 만남으로 비즈니스 에니어그램 외에도, 부모와 자녀 간, 가족의 소통을 돕는 에니어그램을 시작할 때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생각의 씨앗이 얼마나 빨리 실행으로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현재는 조직과 조직 속의 개인들을 돕는 것에 소명을 두고 있고 한 곳에 집중하면 다른 곳에는 주의를 잘 돌리지 않는 내 성격 때문에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관심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내면의 빛을 드러내는 것을 돕는 것이고, 그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가정과 조직에서의 삶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라, 이 씨앗은 이미 내 안에 있는 토양에 더 빨리 뿌리내리고 빠르게 자라날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 4년 이상, 리더십과 소통 프로그램을 자주 운영하며 40대, 50대 관리자들 안에 있는 두려움, 불안, 분노, 화, 외로움, 수치심 등을 만났습니다. 그 치유가 일어나야 할 근본적인 공간은 자기 내면이지만, 그 내면으로 들어가는 연결 통로는 조직과 일만이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임을 봤습니다. 그래서 조직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 이상, 개인이 가진 이슈들이 통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씩은 그 해법을 찾고 나름의 적용을 하고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제의 만남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있었던 씨앗 하나에 더 깊은 눈길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햇살과 비와 대지의 양분이 이 씨앗을 키우도록 놓아두려 합니다. 아직은 아니다 경계 지어 밀어내지 않고, 서둘러 비료를 뿌리며 조급해하지도 않고 일어나는 대로 경험하며 즐기며 지켜보겠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아직도 경계 짓기, 한계 짓기에 능한 나의 에고를 지켜보고 다루는 데에도 좋은 수련이 될 것임을 알기에 정직하게 경험하겠습니다.


이 씨앗에 깊은 눈길 돌리게 해주고 나의 일과 일상의 수련 주제를 또 하나 열어준, 어진, 하영, 도윤과 엄마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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