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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숲 편지 154호 : 12일간의 단식수련을 마치고

HIT 521 / 정은실 / 2012-10-19

지난달에 12일 동안 생수만 마시면서 단식을 했습니다. 여러 달 동안 몸이 별 이유 없이 피곤하고 무겁기도 했고, 내면을 다시 한 번 챙기는 집중적인 수련이 필요하다 싶던 차에, 우연히 뵙게 된 한 스님과의 인연으로 단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일이나 7일정도의 짧은 단식은 예전에 요가수련을 할 때 서너 차례 경험해봤지만, 12일을 해본 적은 없었던지라, 일상의 일들을 하면서 가능할까 싶어 결심이 쉽지 않았습니다. 12일 생수단식의 효과와 단식수련을 여러 차례 경험하며 몸을 살린 그 스님의 지혜로운 안내 덕분에 용기를 내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잘 마쳤고, 오늘로 20일째 보식을 하고 있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몸을 소중하게 만났습니다. 세끼 식사를 끊으니, 초기에는 배고픔으로 아우성치던 몸이 스스로 자정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위장, 목, 허리, 신장, 방광 등 평소 좋지 않던 부분들이 2-3일 정도씩 잠을 편히 잘 수 없을 정도로 한곳씩 돌아가면서 아팠습니다. 신기하게도 한 번 아프며 지나간 부분은 누군가 치료를 해준 것처럼 가벼워졌습니다. 명현반응이었습니다. 신기한 몸의 반응을 지켜보며 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나를 담아줘서 참 고맙다, 허락 없이 단식을 시작해서 미안하다, 앞으로 부주의한 생활습관으로 너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 남은 단식과 보식 기간 동안 나를 믿고 도와주렴. 그렇게 몸에게 감사하며 몸과 나의 관계를 느끼며 몸과 만났습니다.

세상의 생명들이 음식으로 내 안에 들어와 얼마나 큰 에너지로 변환되고, 그 에너지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음식 공급을 끊자 평소처럼 활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좋아하던 산책도 천천히 걸어도 채 100미터를 걷지 못하고 앉아서 쉬어야 했습니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늘 떠올라있던 미소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던 몸이 보식을 시작한 첫날 딱 하루 동안 묽은 미음을 먹었을 뿐인데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계단을 올라오는 다리에 힘이 실렸습니다. 극히 적은 양의 음식만으로도 내 몸에 생성되는 에너지의 크기에 놀랐습니다. 미소를 띠는 것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식물과 동물에 담긴 생명의 에너지를 내 몸에 받아들인 후 내가 세상에 다시 돌려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받은 것보다 돌려준 것이 너무도 적음에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신적 에너지를 강렬하게 체험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단식을 시작하며 발원문(發願文)을 작성하고, 매일 아침 그 내용을 되새겼습니다. 간절한 발원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 한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어.’하고 합리화하며 도중에 단식을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더 놀라온 체험은 단식 3,4,5일째에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파트너 교산과 함께 진행하는 강의가 있었습니다. 교산이 강의를 하는 동안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집중을 하자 그 당시 명현반응이 일어나고 있던 심한 위장의 통증을 나도 모르게 잊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강의를 하는 동안에는, 평소 강의 시의 에너지와 다르지 않은 상태로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나의 생각, 느낌, 행동, 욕구와 나를 분리하며, 내 안의 나를 깊게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단식원에 들어가지 않고 집에서 했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고 가족들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엄청난 식욕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 식욕과 처음에는 싸웠고 나중에는 달랬고 마지막에 가서는 무심하게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욕구가 내가 아님을, 수시로 떠올라 사라지는 생각과 느낌이 내가 아님을, 어떤 욕구와 생각과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원래 세운 의도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삶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가장 깊은 휴식 시간이었습니다. 미리 약속이 되어 있던 강의, 교재개발, 회의, 꼭 만나야 할 사람, 꼭 써야 할 이메일, 최소한의 집안일, 가족과의 대화에 필요한 시간 외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아주 천천히 산책을 하거나 햇살 가득한 산책길 의자에 앉아서 보냈습니다. 평소 시간이 부족해서 충분히 읽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책도 거의 읽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늘, 바람, 햇살, 나무, 지나가는 사람들, 내 몸, 내 마음의 흐름을 알아차리며 그저 존재하기’를 하면서 보냈습니다.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평소 무엇인가를 하면서 채웠던 시간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더 풍성해졌습니다. ‘멍 때리기’와 ‘온전히 그 순간에 존재하기’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미세하게 느꼈습니다. 길고 달콤한 몸과 마음의 휴식이었습니다.

긴 심신의 휴식을 되돌아보며, 이 평화와 생명과 내려놓음과 감사의 기운을 더 소중히 키워가기 위해서, 며칠 전부터 새벽 108배 올리기와 매일 낮 12시까지 완전금식하기 100일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체질인데 요즘은 잠자리를 가볍게 털고 일어납니다. 낮12시까지 물도 차도 마시지 않으면서 12일 단식수련의 발원을 되새깁니다. 수련 자체를 위한 수련이 아니고, 의지력 시험도 아니고, 내 깊은 곳의 서원을 내 삶에 연결시키며 에너지를 길어 올리고 확장시키기 위한 수련입니다. 보식 후 며칠간 하루 0.6~1kg씩 되돌아오던 체중 증가가 멈추고 열흘 이상 체중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단식 전보다 식사량이 70% 수준으로 줄었는데도 온 몸의 기능은 더 활발합니다. 마음 또한 내면이 고요할 때도 흐트러질 때도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알아차리고 바라보며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습니다.

나의 개인적 경험일 뿐이지만, 단식수련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이렇게 나눠드립니다. 혹 실행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하여 제가 안내받은 유의점을 알려드립니다. 12일간의 생수단식은 체질을 바꿀 수 있는 매우 좋은 수련법이기는 해도, 보식을 잘 못 하거나, 자주 하면 몸을 상하게 한다고 합니다. 보식 기간 중의 식욕을 잘 관리해야 하고, 빈도는 2년에 한 번 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또 건강개선이나 자신의 복을 비는 이기적인 수준의 발원을 하면 단식기간이 그냥 의지로 굶는 고통스러운 기간이 될 뿐이라고 합니다. 잘 경험하려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참회하고, 앞으로 진정으로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서 세상과 타인에 기여하고자 하는가를 발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대 가슴에 귀한 발원이 있다면, 12일 생수단식은 그 발원을 온 몸의 세포에 심을 수 있는 좋은 자기수련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은 이들의 경험을 나의 경험으로 한 번 더 검증한 것을 그대와 나눌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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