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숲 편지 152호 : 문제로 찾아온 3일간의 축복
HIT 670 / 정은실 / 2012-03-04
지난 2월에 한 공공조직에서 진행했던 3일간의 교육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미 첫날 교육이 시작되었는데, 그 조직의 교육담당 리더가 교재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교재 크기와 표지 양식이 조직 규정에 맞지 않고 제본 상태도 깔끔하지 않으니 다시 제작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재작업에 최소 하루 이상이 소요가 되므로, 뒤늦게 새 교재를 배포할 때의 문제가 예측이 되어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사내강사과정이라 충분하지 않은 교육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 쉬는 시간도 개인면담으로 활용하고 있는 꽉 짜인 교육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변명거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공공조직의 특성을 더 민감하게 고려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컸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것 없이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여 재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납기 일시를 교육 종료 시간까지로 최대한 늦추고, 우리 작업을 긴급으로 해줄 수 있는 인쇄소가 있는지 물색을 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밤에 인쇄소로 달려가서 하나하나 점검하며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완성시킨 두 번째 교재도 안타깝게도 고객의 요구를 100%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고객의 문제제기는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 일을 경험하면서 세 가지 감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나와 파트너 교산의 내적 성장을 확인한 것입니다. 후회스럽고, 당황스럽고, 자존심이 상할 수 있고, 상대를 비판하거나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는 그 상황에서, 우리는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고객과 불편한 협의를 하는 중에도, 무엇보다 중요한 학습자들에 대한 몰입의 힘을 잃지 않고 그들과 온전히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불편해진 우리 입장보다, 재작업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고객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고객에게 미안함을 충분히 표현하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에 대한 고객의 존중과 신뢰였습니다. 우리와 사내강사양성 과정을 기획하고 세 번째 과정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우리가 규정을 맞추지 못한 일에 대하여 자신의 상사가 크게 화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서 얼굴을 붉히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녀는 우리 입장을 최대한 헤아리고 중재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그녀의 존중과 신뢰에 깊은 감사를 느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그 일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인쇄소 H 과장입니다. 그는 퇴근 시간 이후에도 우리를 기다려가며 작업을 해주었습니다. 비록 그가 만든 결과물이 우리 고객의 기준은 통과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의 고객으로서 그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고의 작업을 했음을 인정했습니다.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난색을 표하거나 거절부터 하지 않고, 일단 우리 상황을 차근차근 확인한 후, '해보겠다'고 답하고 최선을 다한 그에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3일 교육을 모두 마친 후, 그에게 입금을 하며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H 과장님. 송금했습니다. 급한 상황을 이해해주시고 방법을 찾아가며 잘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이 메시지를 쓰면서도 고마움으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잠시 후에 답신이 왔습니다. “저희가 감사합니다. 너무 어렵게 해드려서 죄송하지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인쇄소 H 과장은 본래 감정표현을 잘 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업무시간도 칼같이 지키던 사람이었습니다. 짧은 답신이었지만, 답신에 담긴 단어들에서 나는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교육도 특별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 사내강사양성 3일 교육과정은, 문제가 발생함으로 인하여 더욱 특별한 교육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위장된 축복’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일은 나에게 필요한 때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품고 옵니다.
2월의 그 일은 나에게 현실이 얼마나 소중한 수련의 장인가를 말해주고 갔습니다. ‘네 의식의 촉각을 더 섬세하게 세워, 오랜 수련의 장에서 얻은 지혜를 순간순간의 삶에 뿌리내려라. 작은 일도 큰일도 없다. 그것을 경험하는 깊이가 일의 크기를 결정한다. 철저한 정직함으로 경험의 과정을 들여다보라. 그 정직한 삶의 힘으로, 네가 배운 지혜를 세상에 전하라.’
나와 교산의 마음에서 오르내리는 미세한 진동을 알아차리며 평정심을 배웠습니다. 고객이 보여준 존중을 통해, 설령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하더라도 어떻게 존중을 표현해야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인쇄소 H 과장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그 3일을 온전히 살며, 3일이 준 메시지를 배웠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3월이 시작됩니다. 봄처럼 부지런해지려는 그대라면, 그대가 창조해내는 일의 숫자만큼 조우할 문제도 적지 않겠지요? 그대가 만나게 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아름다운 축복이 되어, 그대 봄의 하루하루가 순간순간 더 화사하게 꽃피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