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숲 편지 151호 : 함께 있기, 함께 하기
HIT 464 / 정은실 / 2012-02-27
지난 주 목요일 전라남도 담양에서 아침 9시부터 특강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3시간 30분 가까이 걸리는 먼 길이었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아서 전날 내려가지 못하고 당일 새벽에 출발을 했습니다. 혼자 쉬엄쉬엄 운전해서 가려고 했는데, 내가 많이 피곤해보여 걱정이 된다며 파트너 교산이 따라나섰습니다. 사실 거의 밤을 새며 진행된 1박2일 세미나가 주말에 있었고,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쉴 틈도 없이 강사양성과정을 타이트하게 진행을 한 터라 피곤하기는 교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그럼, 중간에 교대하자.’ 말하고 잠깐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떠보니 이미 담양이었습니다.
강의 장소에 도착하니, 시작 전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습니다. 교산은 아침식사를 하러 가고, 나는 담당자를 만나서 상황을 파악하고, 강의실 세팅을 어떻게 바꿀지 살펴보고, 커피 한 잔으로 잠을 깨웠습니다. 한 명 두 명 모여드는 사람들의 기운을 느끼고 공간의 기운과 어우러져 편안해지고 있는 사이, 밖에서 기다리겠다던 교산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고요하게 힘 있게 소통해. 함께 있을게.” 답신을 했습니다. “응. 고마워. 함께 할게. 지금 나 고요해.”
특강의 대상은 대기업의 리더들이었고, 주제는 ‘소통’이었습니다. ‘소통’은 교산과 내가 같이 쓰고 있는 두 번째 책의 키워드이고, 최근 8~24시간 프로그램으로 심도 있게 운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주제 자체는 나에게 무척 익숙한 것이지만, 2시간 특강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부담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실제적인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과 방식으로는 강의하지 않는다는 나의 원칙 때문에, 또 나는 특강에 적합한 강사가 아니라는 자기제한 때문에, 나는 이 주제로는 특강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스스로에게 채워놓았던 자기제한의 자물쇠 하나를 열고, 나의 원칙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검토해보기 위해 수락했던 특강이었는데, 정작 나보다 곁에서 지켜보던 교산이 더 걱정이 되었나봅니다. 짧은 문자 메시지를 몇 차례 읽어보니, 걱정을 떨쳐내며 긍정적 에너지를 모아서 고른 단어들 속에, 큰 응원과 깊은 믿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 단어들 중에서 특히 와 닿은 단어가 ‘함께 있을게.’이었습니다.
특강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나는 그 공간의 서른두 명 리더들과 ‘소통’하며 ‘소통’에 대한 메시지를 온 마음으로 전했고, 그들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비록 2~3일 동안 진행하는 심화 과정의 효과와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튼실한 작은 씨앗 하나가 그들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과의 소통 덕분에, 내 안에 있던 자기제한의 자물쇠 하나가 열렸고, 특강의 가치에 대한 나의 인식이 새로워졌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니 교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 날의 강의로 밤사이 물에 젖은 솜처럼 피곤해하더니 오히려 강의를 하며 물을 머금은 듯 살아난 나를 보고, 교산의 표정도 환해졌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알았습니다, 이번 강의를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있을게.’ ‘함께 할게.’ 난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 말을 언제 써야 하는 것인가를 이번 경험을 통해서 명료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있겠다,’ ‘함께 하겠다’는 말은, 나는 당신을 온전히 신뢰하고 지지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내가 상대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에서 나옵니다. 그 말은 나와 그 대상 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나의 이득이나 욕심을 내세움 없이 상대가 하고자 하는 일에 내 에너지를 온전히 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내 에너지가 상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기신뢰가 있을 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너로, 네가 나로 확장되어,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의 특강 경험 이후, 나는 ‘함께 있기,’ ‘함께 하기’에 대해서 계속 명상 중입니다. 그동안 내가 내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함께 있었는지, 진정으로 나와 상대를 믿으며 온전한 연결을 경험해왔는지, 내 이기심을 버리고 더 높은 가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를 내놓았는지,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 명상의 끝이 어디일지 아직 나도 알 수 없지만, 지금 나에게 분명한 것은, ‘함께 하기’는 소통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단계라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참 중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대는 지금 누구와 무엇을 함께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