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숲 편지 150호 :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그대
HIT 918 / 정은실 / 2012-02-04
3주일 쯤 전에 찍은 수선화입니다. 제주에서 세미나 참가 중에 참가자들과 같이 들렸던 어느 화가의 집 뜰에 피어 있던 꽃입니다. 아무리 남도이지만 겨울은 겨울인지라 정원은 얼핏 보기에 휑하니 비어있었습니다. 그 집으로 안내하신 분이, 봄부터 가을까지 참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하여 찬찬히 살펴보니, 폭신폭신한 땅에 새싹들이 보이고 정원 한쪽에 대여섯 포기 수선화가 보였습니다. ‘이 겨울에 수선화라니!’ 반가운 마음에, 곳곳에 머리를 내민 새싹을 밟을세라 조심조심 다가갔더니 이렇게 사랑스런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은 꽃이라 어찌 찍으면 잘 나올까 고민한 끝에 얻는 사진이라 귀했습니다. 같이 나누고 싶어서, 세미나에서 돌아온 후에 세미나 참가자들끼리 만든 카페에 수선화 사진을 올렸습니다.
오늘 카페에 들려보니 두 친구의 댓글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새로움은 장면에 있지 않고 눈에 있군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 것을 새롭게 보게 해주네요.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볼 수 있는 '눈', 그 '눈'과 '가슴'을 찬탄합니다.’ ‘당신의 눈을 통해서 제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그날 다른 참가자들이 잠시 정원을 둘러보고 화가를 만나러 집 안으로 들어간 사이, 나와 또 한 친구만 정원에 더 머물러 있었습니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뜰에 수선화가 있었는지, 혹은 그 수선화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친구의 댓글처럼, 나는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보는 눈과 표현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귀한 달란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귀한 달란트는 나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댓글을 달아준 한 친구에게는, 개인적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객관적으로 모으고 분석하여 남다른 통찰을 길어 내는 힘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친구에게는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을 연결하여 일을 만들어내는 열정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통해서 내가 충분히 창조하지 못하는 세상을 경험하고 배웁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달란트를 통하여 타인과 다른 시각이나 방식으로 삶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자기가 가진 달란트에 있어서 전문가들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일을 할 때, 각자의 달란트가 존중되고 소통이 원활하면 시너지가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서로 다른 달란트가 존중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달란트를 존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것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길 때, 타인의 것도 시기심 없이 존중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달란트를 존중할 때, 그것으로 인하여 나의 일이 더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내 일상이 안전하게 영위되고, 내가 속한 사회가 유지발전 됨을 인정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않고, 더 겸손한 마음과 더 따뜻한 가슴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대는 어떤 귀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나요? 그것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나요? 그대의 달란트가 이 세상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밝히고 움직여가고 있는지를 알고 기억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