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숲 편지 149호 : 사진 한 장을 바라보다가
HIT 970 / 정은실 / 2012-01-31
며칠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겨울인데 초록빛 넝쿨이 보여 이상하다 싶으신가요? 제주도 함덕 해변에서 서운봉으로 오르는 산길입니다. 1월6일부터 2주일간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 남편과 함께 참석을 했는데, 아이 둘만 집에 있게 할 수가 없어서 동행을 했습니다. 이 사진은 세미나 초반에 있었던 짧은 오후 산책길에 따라나선 아이들과 내가 같이 걷고 있는 모습을 아이들 아빠가 찍은 것입니다.
세미나 기간 동안 찍은 사진들 중에 유난히 이 사진에 마음이 갑니다. 촬영을 의식한 표정과 포즈가 없어서 자연스럽습니다. 그날 그 아름답던 바닷가 봉우리의 나무와 바람과 대지의 감촉이 고스란히 기억에 되살아납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어른들과 걷고 있지만 엄마 뒤를 따르며 그지없이 편안해 보이는 아이들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앞서 걷다가 뒤돌아서서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부지런히 카메라 앵글을 맞추었을 남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무 그림자인지 사람 그림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그림자가 보이네요. 자연과 사람의 어우러짐이 정겹습니다. 빈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들어와서 찍힌 남도의 햇살도 보이네요. 아기의 뺨처럼 투명합니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그때 그 공간이 지금 이곳인 듯 생생해집니다. 그날 그 함덕 바다는 참 아름다웠습니다. 어른들 따라 다니기 귀찮다며 숙소에 그냥 있겠다고 투덜대던 아이들도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더니 강아지처럼 해변으로 달려갔습니다. 산책에 별 다른 것이 있을까 나섰던 어른들의 표정도 아이처럼 맑아졌습니다. 꽉 찬 듯 텅 빈 자연이 소리 없이 스며들어 몸과 마음의 빗장을 열어줬습니다. 그날 그 공간이 담담히 내려놓음의 시작이었나 봅니다. 일상의 역할과 책임을 멈추고 머물렀던 남도의 2주일. 그 2주일간의 시작, 눈물, 아픔, 연결, 놀라움, 용기, 결단, 환희, 감사, 사랑의 기억이 이 소박한 사진 한 장 뒤로 첩첩이 일어납니다.
오늘은 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돌이켜보니 나의 1월은 남도의 그 2주일을 준비하고, 그 2주일을 온전히 살고, 그 2주일의 메시지를 삶에 활착시키기 위한 고민으로 채워졌습니다. 잠시 전에 이 사진을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았습니다. 2012년의 첫 한 달을 기억하고, 그 한 달이 남은 열한 달의 거름이 되도록 하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대는 1월의 서른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요? 그대의 1월을 상징하는 기억 하나, 사진 한 장, 느낌 한 자락, 혹은 단어 하나를 뽑아본다면 그것은 무엇일는지요? 새해의 첫 한 달을 보내고 새로운 한 달을 맞이하며 자기 자신과 고요히 마주하고 있는 그대에게 이 질문을 담아 사랑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