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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숲 편지 147호 : 조직을 떠나는 임원들을 지켜보다가

HIT 524 / 정은실 / 2011-11-30


오늘은 지난 몇 개월간 진행해오던 A사 임원 프레젠테이션 코칭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마지막 인사차 만난 인재개발팀 담당 과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웠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근 임원 인사 발표가 났는데, 여러 임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답니다. 일과 회사에 애정을 갖고 밤낮 없이 애써오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타의에 의해 떠나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고 했습니다. 유달리 일과 사람 모두에 애정이 큰 그가 씁쓸해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2년 동안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나 역시 이맘때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경험했던 마음이었습니다.

세월이 제법 흐른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 씁쓸한 마음은 조직이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온 슬픔이었다는 것을. 그 슬픔 아래에는 내 미래의 안위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는 것을. 그 두려움 아래에는, 나에게 부여된 삶의 시간 동안에, 최적의 공간에서 최적의 방법으로 나를 성장시켜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싶은 깊은 욕구가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내 마음 깊은 층의 두려움과 욕구를 알아차리자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고요해진 마음의 수면 위로 조직의 실체가 좀 더 객관적으로 비춰지기 시작했습니다. 냉혹하고 비합리적인 조직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조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조직 속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두려움 속에서 각자의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부하를 내친 상사 또한 한 사람의 부하이고, 조직의 오너 또한 자기 사업의 흥망성쇠를 앞에 두고 고군분투하는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인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 조직의 밝은 면이 또렷하게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혼자서는 못하는 일을 해볼 수 있는 곳. 타인과 관점을 나누며 생각의 신선한 확장을 경험할 수 있는 곳. 함께 소통하며 이뤄내는 기쁨이 있는 곳. 더 큰 꿈을 꾸게 하는 곳. 많은 기회와 사건사고 속에서 문제해결의 지혜를 배우는 곳. 다양한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성장시킬 수 있는 곳. 잘못된 조직은 없었습니다.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조직상을 해체하고 새롭게 구축하면서 나는 실체 없는 조직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조직의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한계의식보다 도전의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직이 가진 문제들의 틈새로 비쳐 나오는 성장의 가능성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고군분투하는 리더들을 향해서 그들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든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직 속에서 삶의 균형과 성장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려하는 개인들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는 선배 한 분도 오랜 세월 혼신의 힘을 쏟았던 조직을 다음 달에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오늘 들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충분히 듣고 난 후, 선배에게 이런 인사를 전하려 합니다. “선배,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지금 떠나신다하여 선배의 지난 세월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선배는 조직에서 크고 귀한 성공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보다 더 큰 변화 앞에 서 계십니다. 그것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떠남의 아쉬움, 서운함, 화가 없을 수 없겠지요. 선배의 표정에 그 기색이 짙게 비친다면 그의 마음을 좀 더 듣고 난 후에 이 말까지 해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조직이 선배를 떠나보내는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시면, 선배 스스로 더 아름다운 조직 하나를 만들어내세요. 그것이 조직 속에서 자란 우리가 조직을 진화시키는 또 한 가지 방법, 그리고 가장 큰 기여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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