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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숲 편지 145호 : 나(小我)에게서 나(大我)에게로

HIT 768 / 정은실 / 2011-08-25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고 창조한다는 기쁨을 가지고 음악을 하게 하소서.

모든 이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깨끗한 정서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게 하소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결한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하소서.

모든 이의 가슴에 숨겨져 있는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되찾게 하는 음악을 만들게 하소서.


- 故 이영훈 (광화문 연가, 사랑이 지나가면, 붉은 노을 등을 작곡)



좋은 글이나 말은 머리를 시원하게 하거나, 가슴을 따뜻하게 하거나, 뭔가를 시도해보게 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글이나 말은, 내 의식을 확장시켜서 내가 더 이상 과거의 상태에 머물 수 없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 글이나 말을 만나면 나는 오래 음미를 합니다. 위의 글도 여러 달 동안 내 노트북 바탕화면에 있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한 음악가가 자기 일에서 갈구한 의미, 인간에 대한 신뢰, 소명에 대한 간절함이, 처음처럼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나는 이영훈이라는 사람을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는 소아(小我)적 삶에서 대아(大我)적 삶으로 전환했거나 전환하려 애썼던 사람이 분명하다 싶습니다.


소아(小我)적 삶은 자기욕구 충족이 무엇보다 중요한 삶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머무르는 삶입니다. 뒤처지지 않으려 하고, 손해 보지 않으려 하고, 더 많이 가지려하고,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구하는 삶입니다. 소아(小我)적 삶에서는 가장 높이 성장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기존재와 자기성장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한 삶에는 알지 못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늘 오르내립니다.


대아(大我)적 삶은 작은 나(小我)의 이기적 욕망들을 넘어서서, 사랑·진리·생명과 같은 아름다운 기운을 세상에 전하는 통로로 자신을 내어놓는 삶입니다. 세상을 밝힌 성인들의 삶이 그러했고, 현존하는 구도자들이 추구하는 삶이 그러합니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에 경쟁도 피해의식도 없고, 태어남의 이유를 알기에 어떤 경험 속에서도 충만하고, 받기보다 주려고 하는 삶입니다. 대아(大我)적 삶은 작은 욕망들을 비웠기에 고요한 동시에,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기에 역동적입니다.


지난 주 3박4일 동안 참석했던 어느 모임에서 나는 대아(小我)적 삶에 대해 명상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나와의 정직한 대면 속에서 내가 움켜잡고 있는 소아(小我)적 삶의 이기적이고 좁디좁은 테두리를 아프게 바라보아야했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아.’ 자족하며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이것이 내 소명이구나.’ 더 명료해지는 소명을 알아차리며 고요해지는 마음과, ‘내가 내 욕심을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주저하는 마음을 함께 만났습니다.


모임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노트북을 켜는데 이영훈의 글이 또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시 읽는 짧은 글 속에서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소아(小我)적 삶에서 대아(小我)적 삶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해갈 수 있는 도구와 과정을 발견했습니다.


그 도구는 ‘일’입니다. 일을 통해 우리는 밥벌이, 돈벌이, 인정, 성취와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아직 없었던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기쁨을 경험합니다. 그 기쁨이 거듭될수록 성장이 일어납니다. 성장할수록 자기 테두리를 벗어나 타인을 바라보게 됩니다. 바라봄 속에서 모두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그 아름다움을 신뢰하며, 일을 통해 자신의 방식으로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데에 기여하고 싶어집니다.


나는 일을 통해 어떤 성장의 과정을 경험해왔나 돌이켜봅니다. 지금 나의 일은 어느 단계에 어떻게 머무르고 있나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느낍니다, 내 소아(小我)적 삶 속에도 대아(大我)적 삶의 순간들이 경험된 적이 있고, 그 경험의 순간들이 조금씩 더 자주 나타나고 있었음을. 내가 고요할 때, 내가 한정지음 없이 자유로울 때, 관계 속에서 나를 드러냄 없이도 충만할 때, 조건 없는 사랑의 기운이 내 안에 차오를 때, 비 지나간 나뭇잎에 햇살이 반짝이듯 문득 세상이 눈이 부셔서 마음이 잠시 멈출 때, 그리고 지금 또렷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분명 경험된 그 어떤 순간들에, 나는 분명 작은 나의 경계를 벗어나서 큰 나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나(小我)에게서 나(大我)에게로’의 여정은 성인(聖人)이나 수도자들의 여정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여정입니다. 비록 그 여정이 완성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여정의 한 걸음 걸음마다 우리는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만 인식 가능한 최고의 상태에 도달합니다. 점점 확장되는 존재의 중심자리에서 기쁨, 감사, 고요, 축복을 더 깊게 경험합니다. 그 여정을 안내하는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유용한 것이 바로 우리 각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입니다.


나는 오늘 나의 ‘나(小我)에게서 나(大我)에게로’의 여정의 한 지점을 확인하며, 나를 안내하였고 안내해줄 나의 ‘일’을 소중히 느껴보고 있습니다. ‘나(小我)에게서 나(大我)에게로’의 여정이 아직 멀고멀지라도, 나의 소명이 담긴 일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간다면, 여정의 모든 과정 속에 이미 그 끝이 함께 있을 것임을 믿습니다. 나(小我)와 나(大我)는 함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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