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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숲 편지 138호 : 예쁘게 티내기

HIT 872 / 정은실 / 2011-01-10

며칠 전의 일입니다. 지인과 점심식사를 하려고 한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인테리어나 메뉴는 특별할 것은 없는 어느 곳에나 있을만한 평범한 음식점이었습니다. 주문을 하다가 지인이 종업원에게 ‘혹시 후시딘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손에 나 있던 상처의 딱지가 채 아물기 전에 떨어져서 불편해보였습니다. 스무 살 남짓 되었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종업원은 그 상처를 보고 가더니 잠시 후에 돌아와서 ‘지금 후시딘이 없어요. 제가 사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지인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지만, 종업원은 ‘원래 준비해놓는데 지금 떨어졌습니다. 안 그래도 사려고 했어요.’라고 말하며 돌아가더니, 5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새 후시딘과 대일밴드까지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날 3인분에 28000원짜리 식사를 했을 뿐인데, 고급 레스토랑에서 아주 호사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온 느낌이었습니다. 음식은 들어갈 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그 지역에 다시 가게 된다면 다시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당에서 상비약을 찾으면 대개의 경우는 뭘 그런 것을 찾느냐는 표정과 함께 ‘없는데요.’라는 성의 없는 답변을 듣게 됩니다. 그보다 좀 나은 경우는, ‘죄송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라는 수준의 반응입니다. 미안해하는 표정과 함께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사드릴까요?’라고 말을 하는 종업원이 있다면 예의바른 종업원을 뽑아서 기본 고객응대 매너를 교육시킨 비교적 우수한 식당입니다. ‘지금 없는데 제가 사드리겠습니다.’라고 답변을 하고 바로 사온다면, 종업원들에게 고객 응대법을 제대로 교육을 시키고 그들이 고객에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의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는 훌륭한 식당입니다.

그런데 그 앳된 얼굴의 식당 종업원의 행동은 훌륭함을 넘어서서 탁월했습니다. 그 어린 아가씨는 손님의 요구만 들은 것이 아니라 섬세하게 상처를 살폈습니다. 딱지가 떨어지려고 하는 것을 보고 대일밴드도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후시딘이 없어서 사와야 하는 상황을 미리 알려서 손님이 고마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일부러 사올 필요까지는 없다며 고객이 미안해하자, ‘안 그래도 사두려고 했습니다.’라는 말로 고객의 마음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섬세한 상황 파악, 최적의 행동 선택, 손님의 요구 충족을 넘어서는 가치창출, 그리고 마음의 부담까지 덜어준 민감성이 어우러진 ‘아주 예쁜 티내기 행동’이었습니다. 말없이 나가서 후시딘 하나를 사와서 그냥 내밀었다면 발생시키지 못했을 고마움과 놀라움의 에너지를 그 ‘예쁘게 티내기’ 행동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신의 사랑이나 어머니의 사랑처럼 큰 사랑은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애썼나를 굳이 티내지 않고 그저 주는 것입니다. 그런 큰 사랑은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그런 큰 사랑을 지향하며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내 수고를 충분히 알아주지 않는 상대에게 서운함을 느낍니다. 인간관계의 많은 문제가 그 부분에서 발생합니다.

나는 그 어린 종업원의 행동을 보다가, 평범한 일상을 햇살처럼 반짝이게 하는 기쁨과 감사의 에너지는, 신의 사랑과 같이 굳이 티내지 않는 온전한 사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대방까지도 기쁘게 하는 ‘예쁘게 티내기’ 행동에서 더 자주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종업원이 손님을 위해 일부러 약국까지 다녀오는 추가 서비스를 티내지 않고 혼자 기쁘게 하고 말았다면 자기 보람에만 그쳤겠지만, 그 사실을 손님이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알게 함으로써 손님도 큰 기쁨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산 과자 한 상자를 지인에게 그냥 선물을 하면 과자 한 상자의 정성을 전하는 것이지만, 출장을 갔다가 그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려고 일부러 유명한 과자점을 찾아가 줄을 서서 기다려 사온 과자라는 이야기를 함께 전하면 지인은 과자 한 상자에 비할 수 있는 감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예쁘게 티내기’는 우리가 수시로 경험하는 ‘예쁘지 않게 티내기, 즉 생색내기’와 뭐가 다른 걸까요? 비언어적인 부분에서도 미묘한 표현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속마음입니다. 생색내기를 할 때의 속마음에는 ‘나는 지금 내 책임 이상의 행동을 하고 있다. 당신이 내 정성을 알아줘야 한다. 그래야 내게 보상이 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쁘게 티내기를 하는 속마음에는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 최고의 행동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을 알리는 것은 상대를 더 기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최고의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보상이다. 상대방의 기쁨은 내가 얻는 추가적인 보상이고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돕는 자로서의 내 책임이다.’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식당에서의 그 에피소드를 경험하며 나는 ‘예쁘게 티내기’와 ‘생색내기’의 차이를 명료하게 배웠습니다. 어떤 속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티내기가 말없이 행하기보다 오히려 더 이타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대는 지금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을 예쁘게 티를 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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