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121호: 안개 지대를 벗어나다
HIT 770 / 정은실 / 2010-03-08
지난 토요일 새벽, 전라도 경각산에서 눈을 떴습니다. 산 정상에 있는 ‘불재 뫔 수련원’에서 금요일부터 시작한 수련 프로그램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봄비 내리는 경각산 정상은 자욱한 안개로 한 치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후에 경기도 부천에서 강의가 있어서 새벽에 길을 나서야 했던 나는 난감했습니다. 안 그래도 수련을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내려가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는데, 이 안개 길에 꼬불꼬불한 산길을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까, 짜증과 두려움이 일어났습니다. 안개가 좀 걷히면 출발할까도 싶었지만, 집에 들려 좀 더 챙겨서 가야할 강의 준비물이 있어서 출발시간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온갖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는 마음을 달래서 ‘가자!’라고 결심하고, 비상등에 안개등까지 켜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1-2미터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 차선을 걸어가듯이 들여다보며, 몇 백 미터 정도 내려오자 다행히도 안개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개는 산 정상에만 그렇게 짙었던 것이었습니다. 평지에 도착하자 막힌데 없는 호남의 들판 너머로 비안개가 드리워진 산들의 풍광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거의 지날 때쯤에는 환한 햇살이 가득해졌습니다.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며, 오후에 해야 하는 강의를 떠올려봤습니다. 강의의 주제와 기본적인 흐름은 구상이 되어 있었지만, 학습자들이 마음을 열고 참여해야 하는 활동들이 중심이 되는 강의였고, 전체 학습자들이 같은 회사, 같은 공간에서 늘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이라서 어떤 역동이 일어날지는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악의 경우가 나도 모르게 떠오르며 살짝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생각이 두려움보다 더 큰 설렘을 일으켰습니다. 안개 짙은 경각산 아래에서 아름다운 비안개 풍광과 햇살을 만났듯이, 강의 역시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강의는 최상의 상태로 진행되었습니다.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를 회사에서 진행하는 교육에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습자들은 시종 진지하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전체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나는 그들 속에서 내가 나의 메시지와 그들의 마음과 같이 녹아 흐르는 강의명상을 경험했습니다. 강의를 마친 후 소감을 나누며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함께 바라보며, 새로운 인식, 흥미로움, 설렘, 새로운 시작을 예감한 흥분, 자랑스러움을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처음 만났을 때에는 없었던 봄 햇살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들로 가득 찬 도로 위에서도 마음은 들판처럼 시원스럽게 열려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를 돌아봤습니다. 수련 프로그램을 마치고 싶어서 강의를 미리 연기하거나 취소해버렸더라면 어땠을까, 안개를 핑계로 길을 늦게 나서서 해야 할 강의준비를 마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내 두려움을 넘는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름다운 미소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강의명상을 하지 못했겠지요. 안개 짙어도 떠나야 할 길이 있었고, 그 길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풍광들이 있었듯이, 두려움과 타협하지 않고 시작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 일이 선물한 경험은 아름답고 충만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안개 지대를 넘으며, 나는 또 한 번, ‘마음에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는 내 영혼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온갖 핑계거리, 걱정, 염려, 두려움에 빠져 삶을 유보하는 대신, 자신이 지향하는 방향대로 전심을 다하여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서 힘 있게 행동하며 세상을 경험하기......
그대 지금 혹 어떤 안개 지대에 머무르고 있지 않은지요? 그대 마음의 잡다한 변명거리들이 만들어내는 테두리 안에 머무르지 말고, 그 마음 깊은 곳에서 그대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 방향대로 힘 있게 한 발 걸어 들어가 보세요. 아름답고 충만한 삶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