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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ite You & Your People 제113호: 아름다운 나이

HIT 883 / 정은실 / 2009-12-22


“엄마는 몇 살이면 좋겠어?” 열한 살 막내가 옆에 오더니 불쑥 물었습니다. “너는 몇 살이면 좋겠니?” 했더니 열아홉 살이랍니다. 그 나이면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성인이 된다는 것을 형에게 들었나봅니다. 막내와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 열아홉 살에 처음 만났던 대학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어제 그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한 친구가 작년부터 딸아이를 유학시키고 있어서 그 친구가 귀국하는 때가 우리가 만나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제 중년이 된 친구들은 언제부턴가 주로 아이들 교육 이야기만 하곤 했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나서 아이들 이야기만 나누고 싶지는 않아서, 일찍 자리를 뜨고 싶을 정도로 늘 그 자리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어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또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불편해하면서도 그냥 듣고만 있는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음을 갑자기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대화 흐름을 좀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이야기를 하자. 난 너희들 만나고 들어가면 너희 아이들 이야기는 알겠는데 너희가 어찌 사는지는 모르겠어.”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 한 친구의 가정사로 이어졌을 때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친구가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신체적 정서적 폭력을 당할 정도였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대학 시절, 거의 매일 같이 수업을 듣고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면서도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습니다. 왜 친구는 그때 힘듦을 말하지 않았을까, 친구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친구는 젊은 시절, 자기를 유복하고 화려하고 잘난 아이로 보는 주변의 시선 앞에 자기를 있는 그대로 내놓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힘듦을 말할 수 없었던 어릴 적 친구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남의 시선을 감당하기에 너무 어렸던 것이지요. 자기 실수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 자신의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강한 사람입니다. 약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겉으로 강한 척 하기가 쉽습니다. 아직 그 실수나 부족이나 아픔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시선에 또 한 번 상처 받을까 두려운 까닭입니다.

아직 그 친구는 다뤄야할 마음의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담담히 바라보며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해져 있었습니다. 4시간 정도의 길지 않은 만남 후에 손을 잡고 헤어질 때 친구의 눈빛은 따뜻하게 열려 있었습니다.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아름다운 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야 아픔을 말할 수도 그 아픔을 보듬을 줄도 알 정도로 성장했나봅니다. 내면의 아픔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나이, 그런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나이, 그 나이가 아름다운 나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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