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107호: 자동차의 속도로는 볼 수 없는 것들
HIT 946 / 정은실 / 2009-10-16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게 되나봅니다. 드디어 제주 올레를 경험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지난 금요일부터 4박5일간 제주에서 열린 ‘삶의 예술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하루 더 시간을 내서 올레 길을 걷고 왔습니다. 아이들의 방학이나 휴가기간도 아닌데 5박6일간이나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작은 아이의 중간고사도 며칠 남지 않았고, 연로하신 어머니에게 집안을 맡기고 가는 길이라, 갈까 말까 망설일 때에는 떠나면 안 될 이유들이 왜 그리 많던지! 하지만, 일단 가기로 결심을 하고 나니 복잡한 일정들이 어찌 그리 쉽게 정리가 되던지!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세미나는 그 이름 이상으로 좋았고, 마지막 하루 올레 길은 그 5박6일 일정의 감탄 가득한 마침표가 되어 주었습니다.
올레 길에서, 깊은 아름다움은 삶의 속도를 떨어뜨릴 때 볼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숙소였던 P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올레길이라는 7번 코스가 시작되는 외돌개까지 셔틀버스로 이동하는 데에는 딱 15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걸어서 P콘도까지 되돌아오는 데에는 무려 4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걷는 내내 바다를 볼 수 있는 그 길은, 아름다움과 영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15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4시간 30분을 걷다니요.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효율성의 잣대로 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바람, 햇살, 바다, 나무, 꽃, 억새, 하늘, 흙, 해안, 돌들은, 멈추어 깊게 호흡하며 가만히 자신들을 느껴주는 이들에게만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는 것을 허락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제주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는 짧은 일정 동안 많은 곳을 보고 오기 위해서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한 곳에 들려 사진을 찍고 또 다른 곳에 들려 사진을 찍고... 그때에도 제주는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멈추며 들여다보고 바라보니 그곳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햇살 반짝이는 빛의 바다, 현무암의 묘한 감촉이 가득한 검은 해안, 영겁의 시간이 느껴지는 기암괴석들, 자줏빛 이삭을 가득 매달고 있는 억새밭, 먼 이국의 어느 섬 같은 종려나무와 야자수들, 향기로운 가을꽃들, 바다와 들판이 어우러진 그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신비로운 바람소리, 그리고 마치 그곳처럼 환하게 빛나는 얼굴을 한 가벼운 걸음걸이의 올레꾼들이 그 공간에 있었습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하는 나는 자동차의 혜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로는 달릴 수 없는 길이 있음을, 자동차로 달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속에 앉아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음을 이번 올레 길에서 새삼 크게 배웠습니다. 그것이 삶의 예술 세미나의 아름다운 메시지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5박6일, 나는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 지를 들여다보고 왔습니다. 내가 얼마나 자주 무심결에 가속기를 밟고 있었나를 알고 왔습니다. 내가 만든 내 속도로 인해 내가 미처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들이 이미 온 세상에 가득했음을 한 번 더 알아차리고 왔습니다.
그대, ‘멈추고 깊은 호흡 하며 가만히 머물러 들여다보기’를 같이 한 번 해보지 않으시겠어요? 그 멈춘 곳이 어디이든 그곳에서, 분명 세상과 사람과 당신의 아름다움을 만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