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105호: 목소리를 듣다가 받은 선물
HIT 859 / 정은실 / 2009-09-21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음성메모’ 기능을 발견했습니다. 구입한 지 2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워낙 기계에 별 관심이 없어서 세부기능을 활용하지 않다보니 이제야 그 기능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녹음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미 음성파일들이 여러 개 들어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열어보았더니 어쩌다 녹음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몇 통의 전화통화가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목소리만으로도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는 사람들과의 통화들이었습니다. 지난 4월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3월에 통화했던 것이 들어 있어서 오랜만에 아버지 목소리 들으며 울기도 하고, 얼마 전에 미국으로 떠난 한 친구와의 통화도 있어서 새삼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오빠와의 통화내용을 듣다가 그 시점의 내 감정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하나씩 듣다보니 상대방에 따라 달라지는 내 목소리가 느껴졌습니다. 강의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나절에 걸려온 막내의 전화를 받는 목소리에는 미안함과 반가움이 묻어 있었습니다. 많이 편찮으셨던 아버지와 통화하는 목소리에는 뭘 어떻게 해드리지도 못하는 안타까움과 짐짓 괜찮은 척 하는 가장된 경쾌함이 느껴졌습니다. 관계가 소원해진 친구와 통화하는 목소리에는 거리감이 가득했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통화를 자주 하곤 하던 친구와 통화하는 목소리에는 깊이 이완된 안정감과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가족 문제로 서운함이 있었을 때 오빠와 통화한 목소리에는 날카로움과 짜증이 묻어 있었습니다. 출강하던 회사의 담당자와 통화한 목소리는 세련되고 명확했지만 정감이 별로 없었습니다.
내 목소리의 차이를 알아차린 후에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미안함이었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불편하게 했겠구나, 상대의 느낌을 헤아려주지 않고 내 마음을 풀어놓았구나.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로 간접적인 거부나 공격을 했구나! 또,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새삼 느꼈습니다. 내가 그런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는 것을 나는 절반도 자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경험하는 것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목소리에 내면 상태가 고스란히 반영이 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들으며 그 현상을 느껴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음성메모’ 기능을 확인하다가 듣게 된 나의 여러 목소리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경험하는 것과 몸으로 행동하는 것 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요즈음 내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좀 더 깊게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행동을 알아차리라는 메시지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하거나 코칭을 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더 명료하게 알아차리라는 우주의 메시지 같습니다. 우연이든, 우주의 메시지이든, 분명한 것은 그저 하늘을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은 이 가을에 내가 받은 감사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요즘 어떤 선물을 받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