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104호: 지갑에 얽혔다 풀린 마음 들여다보기
HIT 928 / 정은실 / 2009-09-03
지난 화요일 아침, 8월 말부터 컨설팅을 하고 있는 회사 문 앞에서 출입증을 찾다가 지갑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날 아침 가방을 바꿔서 나왔기 때문에 집에 있겠거니 하고 더 이상 지갑 생각 없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후에 집에 돌아왔다가 저녁에 있는 대학원 강의 때문에 다시 집을 나서다가 지갑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방에도 지갑이 없었습니다.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지갑에 뒀던 물건들이 떠올랐습니다. 신분증, 운전면허증, 얼마간의 현금, 두 장의 신용카드, 그리고 아이들 사진 외에도, 바빠서 은행에 들리지 못해 그냥 며칠 째 넣고 다니던 50만원 수표가 한 장 있었고, 인터넷 뱅킹 보안카드도 들어 있었고, 주민등록등본도 한통 들어있었습니다.
1시간 정도 온 집안을 뒤지며 ‘지갑 찾기’를 했습니다. 건망증이 심한 누군가가 그랬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냉장고까지 뒤졌습니다. 고객사로도 연락을 해서 그곳 화장실에 둔 것이 아닌지 물어보기까지 했습니다. 일단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해놓고, 저녁도 먹지 못하고 강의를 하러 갔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퍼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강의하는 동안 한 번도 지갑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강의 중에는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몰입을 하고 있어서 다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한 학기 동안 내가 좋아하는 주제인 코칭강의를 할 생각을 하며 나는 무척 기분 좋은 상태였습니다. 지갑분실 사건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지요.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니, 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지갑분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내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왜 수표를 들고 다녔을까, 각종 신분증과 신용카드 처리를 하려면 얼마나 귀찮을까, 혹시 가족들 주민번호가 노출되어 불미스러운 일은 없을까, 내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닌 거야, 하는 생각들이 마음을 어지럽혔던 것입니다. 특히 ‘내 생각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 정도 일에 마음조절을 못하지?’ 하는 생각이 내 마음 에너지를 크게 묶어 놓고 있었습니다.
결국, 생각하지 않으려는 생각마저 잊고 ‘지금-여기’에 몰입하면서 나는 편안해졌던 것입니다. ‘결코 ~하지 않으리라’라는 것이 얼마나 마음 에너지를 묶어두는 것인가를 체감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지갑이 나에게 마음공부를 시켰구나!’ 생각하며 누군가에게 가서 잘 쓰이라고 축복하며 단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다음 이틀 동안 짬짬이 그 여러 가지 귀찮은 일들을 담담히 처리했습니다. 후속처리를 하느라 지갑분실에 대해서 계속 인식은 해야 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 마음의 움직임을 알고 나자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후속처리를 끝낸 오늘 목요일 오후, 고객사의 우리 프로젝트 담당 팀장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정 대표님, 지갑 찾았어요. 어디서 찾은 줄 아세요? 화장실이 아니라 인터뷰 하시던 연구실 방에 놓여 있었네요.” 그제야 지난 월요일에 회의실을 사용할 수 없어서 평소 사람들이 잘 출입하지 않는 연구실 방에서 인터뷰를 했고, 점심식사 후에 급히 인터뷰를 시작하느라, 지갑을 가방이 아니라 그 방의 구석에 무심코 놓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전화를 받으며 한참 웃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지갑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분이 더 좋아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이미 좋은 상태였습니다. 지갑이 없어졌다고 하여 오래 기분 나빠야 할 것도 아니고, 지갑이 돌아왔다고 하여 뛸 듯이 기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일어난 일일 뿐이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상태가 중요할 뿐이었습니다. 지갑에 얽혔다 풀린 마음을 지켜본 지난 3박4일, 나는 돌아온 지갑의 가치보다 수십 배 더 값어치 있는 경험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