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103호: 뒤가 어디지?
HIT 868 / 정은실 / 2009-08-24
“서웅아, 어제 풀었던 나눗셈 채점도 해놓으렴!”
“응, 그런데 엄마, 나눗셈이 어디 있었어요?”
“네가 지금 풀고 있는 곱셈에서 뒤로 몇 페이지 넘기면 나올걸?”
“...... 없어. 없는데요?”
“어디 봐. 여기 있네. 뒤로 넘기니까 나오잖아.”
“아니, 엄마, 그건 앞으로 넘기는 거지. 뒤로 넘기는 게 아니잖아요.”
집에서 하루 40분 정도 수학 공부를 하는 둘째 아이를 도와주다가 오늘 일어난 일입니다. 문제집 34쪽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이에게 43쪽에 나오는 내용을 찾아보게 하기 위해서 뒤쪽으로 페이지를 넘기라고 했는데,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과 반대쪽으로 페이지를 넘긴 것입니다. 누가 틀린 것일까요? 아무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생각한 뒤쪽과 내가 생각한 뒤쪽이 달랐을 뿐이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인을 만나 식사를 하던 중에 지인이 자기와 우리 부부 사이에 컵 3개를 일렬로 놓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앞에 있는 컵을 가리켜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나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컵을 골랐습니다. 남편은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컵을 골랐습니다. 이때에도 기준이 달랐던 것이지요. 나는 내 앞에 있는 컵들 가운데 가장 멀리 앞쪽에 있는 것을 골랐고, 남편은 자기와 가장 가까이 앞에 있는 것을 고른 것이지요. 누구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준이 ‘달랐을’ 뿐입니다.
책의 앞뒤를 분별하거나, 컵을 고르는 것과 같은 작은 문제에서 발생되는 서로 다름은, 그냥 웃으면서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차이가 아주 민감한 균열을 일으키고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면, 한 조직의 사람들이 ‘우리 그 일을 함께 해갑시다’라고 다짐을 했는데, 구성원들은 일의 방향성을 잡고 세부적인 것들을 논의하는 것까지도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직의 리더는 자신이 방향성을 결정한 후에 세부적인 역할을 사람들과 나누어 맡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럴 경우 그 생각의 다름이 서로에게 이해되지 못하면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 예에서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은 아닙니다. 틀린 사람은 없었습니다. 서로 생각이 달랐을 뿐입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진다면, ‘다를 수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서로간의 다름을 사전에 조율하고 도중에도 확인하지 못한 구성원과 리더 모두에게 잘못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지각하는 서로 다른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은 분명 세상을 지각하는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더 자유롭게 살아갈 세상이 될 것입니다.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상황을 더 넓게 이해하고, 사람의 마음에 더 깊게 공감하고, 창의적 해결점을 잘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아직 세상의 틀에 익숙해지지 않은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남다른 관점을 가진 작가들의 책을 읽다보면, 내 분야가 아닌 분야의 이론과 사례들을 접하다보면, ‘아하!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나의 현재 관점을 더 명료하게 알게 되고 확장시킬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아이가 나의 한 방향으로의 생각을 짚어주었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아이는 나에게 서로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