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96호: 파도 같이 살 걸
HIT 1040 / 정은실 / 2009-05-26
지난 일요일 아침, 관악산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그날 오후부터 밤까지 프로젝트 멤버들과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어서 아이들과 뭔가 특별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 예정에 없던 깜짝 소풍을 다녀온 것입니다. 서늘하고 푸른 5월의 숲 기운 속에서 김밥을 먹고 잠시 그네도 타며 놀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관악산 산기슭 농장에서 갓 뽑아 팔고 있는 얼갈이와 열무를 샀습니다. 오랜만에 김치를 담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갈이도 열무도 그것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의 표정도 참 싱싱했습니다.
이 싱싱함이 사라지기 전에 김치를 담가야지, 싶었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해보니 집에 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잣말로 “파도 같이 살 걸!” 그랬는데 그 말을 뒷자리에 앉아 있던 큰 아이가 들었나봅니다.
큰 아이 : “엄마, 왜요? 엄마가 살아온 삶이 후회가 돼요?”
나 : “......? 그게 무슨 말이야?”
큰 아이 : “엄마가 파도같이 살고 싶다고 그러셨잖아요.”
나 : “찬빈아! 엄마는 김치 담글 때 넣을 파를 같이 안 사와서 그 이야기 한 건데...”
온 가족의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같은 말도 이렇게 다르게 알아듣는구나 싶어 재밌기도 했지만, 좋은 기회다 싶어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직업병입니다. ^^). “얘들아, 너희들은 뭐같이 살고 싶니?” 그랬더니 큰 아이는 “창공을 가르는 새처럼 살고 싶어요,” 작은 아이는 “게임처럼 살고 싶어요. 게임 속에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요.” 그랬습니다. 틀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큰 아이와 욕심 많은 작은 아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습니다.
지난달 중순부터 지금까지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유난히 죽음을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일주일 후에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던 친척 오빠가 돌아가셨고, 그 이주일 후에는 대학 은사님이 돌아가셨고, 바로 며칠 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습니다. 나와의 관계도 세상에서 하시던 일도 세상에 남긴 흔적도 다른 분들이었지만, 그분들의 죽음은 하나같이 나에게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겼습니다.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며 죽음에 대한 나의 인식이 새로워졌습니다. 죽음은 삶의 끝이거나, 다른 세상으로 가는 관문인 것만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큰 한 부분. 만약 고귀한 삶을 누구의 말처럼 자신이 오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이라 정의한다면, 분명 죽음은 삶의 가장 큰 한 부분입니다. 죽음만큼 한 사람의 삶을 깊이 조명하게 하고 그 조명의 결과가 남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봉화마을에 이어지고 있는 긴 조문행렬을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떠난 이들의 삶의 행적은 우리 가슴 속에 남고, 우리 또한 우리 뒷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을 것입니다. 삶은 삶으로 이어집니다. 존재했던 것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기억하지 못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나는 주변 산천을 거울처럼 비추어 안고 있는 맑고 고요한 호수같이 살고 싶습니다. 어느 힘든 이가 찾아와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의 의미와 희망을 다시 얻고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호수였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무엇 같은 삶을 살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