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95호: 어릴 적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HIT 1014 / 정은실 / 2009-05-20
몇 주 전에 친정에 두었던 어릴 적 일기장들을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초등학교 때의 일기를 읽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글씨가 어쩌면 그렇게 삐뚤삐뚤한지(나는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동시를 어쩌면 그렇게 자주 썼는지(어릴 때 나는 의외로 무척 감성적이었습니다)!, 공부하기를 어쩌면 그렇게 싫어했는지(‘우리 애들은 공부하는 것은 나를 안 닮았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가족에 대하여, 친구에 대하여, 나에 대하여, 내가 까맣게 잊어버린 혹은 다르게 기억하는 이야기들이 일기장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과거란 정말 왜곡되기 쉬운 것입니다. 좀 과장하여 말하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기억들은 현재의 내가 그렇게 기억하는 것일 뿐, 실재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있었던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수없이 많이 있고, 대개 우리는 그 많은 관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의 기억은 대개 긍정적이고 어떤 이의 기억은 대개 부정적입니다. 팔순이 넘으신 우리 시아버님은 16살에 홀로 고향을 떠나 살아오시면서 온갖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살면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서 고생 하나도 안 했다.’라고 자주 말씀을 하십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룬 것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도 이뤄놓은 것이 없어요.’, ‘나는 행복했던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부정적으로 기억되어 있는 과거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우리 마음속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공간은 오묘해서, 우리가 어떤 기억을 떠올리면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됩니다. 지금 내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현재에 시각화 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로 우리는 그 과거를 현재에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시각화할 때 우리는 뭔가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자신의 바람(want)을 현실 가능한 모습으로 구체화해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관점에 의해 부정적으로 채색되어 있는 과거를 다시 떠올려, 그때의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입사원 때 발표를 하면서 크게 실패했던 일이 있어서 요즘도 발표를 하는 것이 두렵다면 다음과 같이 해봅니다. 그때를 떠올립니다. 큰 실수를 하는 내 모습이 보입니다. 앞자리의 한 사람이 나를 보고 비웃고 있습니다. 실제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기억이 선명해지면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여러 관점에서 그 기억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그 실수는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때로 하는 실수였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나를 보며 웃었지만 그것은 나를 비웃은 것이 아니라 괜찮으니 편안히 하라는 격려의 미소일 수도 있었습니다. 실수를 해서 당황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발표를 잘 마무리했던 나의 모습은 바보스러운 것이 아니라 용기 있게 보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과거가 어떤 빛깔로 채색되어 있나 잠시 돌아보세요. 만약 주로 부정적인 관점으로 기억되어 있다면, 그것은 과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삶을 바라보는 전체 태도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현재는 끊임없이 과거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신의 현재 에너지를 묶어놓고 있는 기억이 있다면, 그것이 한 관점으로 치우쳐 왜곡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세요. 모든 것에는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관점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어릴 적 일기를 읽어보거나, 당신을 잘 알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해보며 또 다른 관점으로 당신을 바라보세요. 당신은 당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