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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ite You & Your People 제92호: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HIT 1052 / 정은실 / 2009-04-20


                      

아버지가 다른 세상으로 가신지 1주일이 지났습니다. 10년 전 신장암 3기로 한쪽 신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셨던 아버지는 1년 반 전에 폐로 암이 전이가 되어 말기암의 고통을 겪다가 지난 4월 초에 폐렴에 걸려 운명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연세나 평소 체력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투병생활을 잘하셨던 것은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 걸린 폐렴도 주치의는 폐렴 진단 후 그날 밤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는데 이틀 후에 폐렴이 호전이 되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는 기운이 없는 중에도 밝은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며칠간의 사투로 소진된 체력으로 병을 이기지 못하신 아버지는 결국 그렇게 부여잡고 계시던 삶의 끈을 놓고 마지막 순간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모습으로, 그동안 거친 호흡을 하시느라 제대로 감지도 못하던 눈을 감으셨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을 하시던 그 1년 반 동안 아버지는 우리 집에 계셨습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는데도 가시고 나니 온 집안에 아버지 흔적이 가득합니다. 호흡이 갑갑할 때마다 나와서 앉아 계시던 거실의 소파, 식욕이 없던 중에도 그것만은 마다 않고 하루에 두어 번 달게 드시던 쌍화차, 기운을 좀 차리실 때마다 가꾸시던 화초들, 변비 때문에 오래 앉아 계셔서 사드렸던 푹신한 변기 커버...... 집안 곳곳에 불편한 몸으로 걸어 다니시던 아버지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 모습은 액자 속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한줌 재가 되어 가족 납골당에 묻힌 아버지의 육신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품이었던 아버지는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 편안히 계시라고 하여도 늘 조심스러워 하셨습니다. 방이 좁고 답답해서 넓은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셨으면서도 우리가 거실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방해가 될까 하여 방으로 들어가시곤 했습니다. 하루 네 번 이상 복용해야 했던 그 많은 약들도 당신이 관리를 하며 드시면서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돌아와서 몸살을 앓으면서도 며칠간 집안을 정리했습니다. 거실을 편히 쓰시라고 비워드리느라 안방으로 옮겨뒀던 우리 짐들을 다시 거실로 옮겼습니다. 다 복용하지도 못하고 가신 그 많은 약들을 버렸습니다. 우리 집에 남아있던 아버지의 유품들을 정리를 했습니다. 거실에 놓아둔 사진 한 장외에는 우리 일상의 겉모습은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위해 우리 집에 오셨던 1년 반 전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와 지금이 같지 않음을 압니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한평생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1년 반 동안의 아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투병 기간과 임종하시기 전 열흘간의 병석을 지키면서 생노병사의 고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절한 살아있음의 갈망을 알았습니다. 영혼이 떠나고 나면 빈집이 되어버리는 육신의 덧없음을 알았습니다. 살아있음을 오감으로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육신의 소중함 또한 알았습니다. 한 생명이 떠나도 변함없이 꽃과 잎이 피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자애롭지도 냉정하지도 않은 자연의 순리임을 알았습니다. 나 또한 그리 왔다가 그리 흔적 없이 갈 것임을 알았습니다.

병든 육신을 훌훌 떠나 바람처럼 자유로워진 아버지의 영혼이 지금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디에선가 빙긋 웃고 계신 것 같습니다. 가난이 아니었다면 목수가 되고 싶었다던 당신이 선택한 이번 생에서의 쉽지 않은 삶을 완수하면서 무엇을 배웠나 돌아보고 계실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보릿고개와 전란을 겪은 어린 시절, 교사로 성실하게 봉직하셨던 40여년 세월, 다섯 아이를 낳아 두 아이를 병으로 잃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 보낸 50여년 세월이 담긴 아버지의 일흔네 해의 삶. 한 권의 자서전도 한 권의 비망록도 없이 가신 아버지이지만, 아버지 생전의 모습은 남은 가족들의 가슴에 더 크게 남았습니다.

아버지, 많이 애쓰셨어요. 이제 편안하시지요? 온몸에 연결된 줄들과 산소호흡기 때문에 한 번 보고 싶다 하시던 꽃 핀 바깥 구경도 못하고 가셨는데 이 세상 마지막 지나가시는 길에 그 흐드러진 봄꽃들도 다 보고 가셨지요? 고통을 도와드리지 못해서 더 편안히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저희 곁에 계셔주셔서 감사했어요. 사랑합니다...... 또 눈물이 흐르지만, 이 눈물 곧 멈추고 아버지 당부하신대로 건강하고 우애 있게 잘 살아가겠습니다.



* 아버지 가시는 길에 마음을 보내주시고 함께 슬픔을 나눠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경황이 없어 미처 연락을 드리지 못한 분들에게 양해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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