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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ite You & Your People 제90호: 아버지의 목소리

HIT 1142 / 정은실 / 2009-03-20


며칠 전 입원 중이시던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네가 우수강사로 뽑혀서 총장상을 받는다면서? 그거 받기 어려운 것 아니냐? 수고했다. 축하한다.” 병문안을 갔던 남편이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한 모양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밝은 아버지 목소리를 정말 얼마 만에 들어보는 것이었는지! 재작년 말에 암 선고를 받고 투병을 시작하신 이래로 그렇게 힘 있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특히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신 후로는 평소 성품과 다르게 웬만한 일에도 짜증을 내시고 하루 내내 웃음기 하나 없던 아버지셨습니다. 당신의 통증 때문에 평소에 즐겨 가꾸시던 화초가 시들어도 신경도 쓰시지 않고 다른 가족들의 안부에도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시던 아버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딸자식의 수상 소식에 당신의 통증까지 잠시 잊으셨던 것입니다.

한 장의 상장과 총장과의 면담, 그리고 약간의 시상금보다 더 기뻤던 것은 아버지가 나의 수상소식을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전화로 축하를 하신 후에도 며칠 동안 내내 아버지는 찾아뵐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시곤 하셨습니다. 학창시절에 내 상장들을 아직도 큰 상자에 넣어서 고향집에 잘 보관해두고 계시는 아버지, 결혼 전의 내 급여명세서들도 차곡차곡 당신 서랍에 챙겨 넣어 보관하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아직도 바라보면 대견한 딸이었나 봅니다. 생각해보니 작년 말에 첫 책을 낸 후에도 아버지는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책을 한 권씩 꺼내어 선물하시며 말없이 딸 자랑을 대신하곤 하셨습니다.

투병생활을 시작하신 후로 고향집을 떠나서 거의 우리 집에서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부모님. 나는 날마다 몸과 생각이 자라는 것이 보이는 두 아이들을 통하여 눈부신 성장의 축복을 지켜보는 동시에, 투병 중인 부모님을 통하여 거역할 수 없는 생명의 순환과 그 쉽지 않은 과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단지 지켜볼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없음이 자주 나를 무력하게 합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의 밝은 목소리는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목소리는 나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살다보면 큰 기쁨도 있지만, 대개의 기쁨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서 옵니다. 기뻐하기로 마음먹고 계획대로 실천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지 않고 있다가 받는 선물처럼 불쑥 찾아오곤 합니다. 특히 감출 수 없는 기쁨은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처럼 가슴속에서 얼굴가득 환하게 비쳐 나옵니다.

부모가 된 이들에게 있어서 그런 감출 수 없는 기쁨은 대개 자식들을 통해서 옵니다. 내 아이들이 나의 눈부신 기쁨이듯 내가 아직 내 부모님에게 그런 기쁨임을, 그런 기쁨일 수밖에 없음을,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면서 배웁니다. 독립한 후 20년이 넘는 세월처럼 1년에 서너 번 뵈면서 그렇게 떨어져 지냈으면 알지 못했을 것들을, 비록 힘든 시기이지만, 함께 있는 지금의 시간을 통하여 배웁니다. 어쩌면 나의 부모님은 이 동거기간을 통하여 사랑이 부족한 나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계시나봅니다.

오늘은 젊은 시절에는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을, 그리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평생의 삶을 통해 성장한 자식들에게까지도 삶의 거름이 되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에게 감사와 축복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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