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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ite You & Your People 제88호: 어둠

HIT 1013 / 정은실 / 2009-03-06


산에 사는 벗의 집에 왔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흙집입니다. 3월 초의 산에는 아직 봄기운이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산에는 뭔가 모를 부드러운 기운이 가득 느껴집니다.

이 작은 집의 거실에 앉아 있으니 커다란 거실 창으로 고요한 겨울 산이 보입니다. 조금 전부터 봄비가 내리더니 가까운 큰 산자락, 멀리 작은 산자락에 하얀 비구름이 연기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집 밖에 나가서 빗소리를 듣습니다. 잠시 눈을 감습니다.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은 나뭇가지들과 줄기들을 미끄러져 내리는 빗소리, 숲의 부드러운 땅속으로 스며드는 빗소리, 그리고 또 한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여행을 준비하는 숲의 생명들이 반갑게 물을 길어 올리는 소리가 실제인지 상상인지 온 몸으로 들려옵니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고 그간 어찌 지냈는지 살아가는 이야기를 잠시 들었을 뿐인데 산속의 시간이 어찌 이리 빠른지요. 어느새 푸르스름한 저녁 기운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저녁은 낮과 밤의 경계입니다. 나는 낮에서 밤으로 옮겨가는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 이맘때면 나는 도시의 아파트 산책길을 거닐다가도 시골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저녁밥 짓는 연기 냄새를 맡곤 합니다. 시골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때며 밥을 지어본 적도 없는데 그러한 마음속 풍경이 내 안에 떠오르는 것이 나는 참 신기합니다.

저녁인가 했더니 이젠 밤입니다. 밤이 되니 낮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거실 창유리가 거울이 되어버렸습니다. 바깥 풍경이 사라지고 내 모습이 비칩니다. 점점이 멀리 인가의 불빛들이 보일 뿐입니다. 이 비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산속의 하늘은 쏟아질 것 같은 별빛을 보여주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 때문에 무엇을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렇게 어둠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찌 보이는 것뿐이겠습니까. 도시에서 들리는 흔한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 이곳에서 벗은 자연의 소리와 자기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듣는다 합니다. 들리던 것이 들리지 않아야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습니다.

이곳 산속 작은 집은 이제 까만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집안에 환하게 불을 켰습니다. 바깥 풍경이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주의가 집 안의 풍경에 그리고 창에 비친 내 모습에 모입니다. 문득 얼마 전에 다녀온 3박4일간의 의식수련 프로그램이 떠오릅니다. 한 가지 이상 오래된 마음의 상처나 삶의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픔의 시간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 한 부분 아파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아픔이 자기들을 성장시켰고 더 깊게 자기를 만나게 이끌었음을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서 별이 더 밝게 빛나듯, 어두운 밤에 집 안의 불빛이 더 밝아지듯, 힘든 시간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더 깊게 만나게 합니다. 힘들거나 아프거나 혼란스러울 때, 내 안의 불 켜기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밖으로 흩어져서 분주한 내 모든 감각을 거두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일입니다. 나를 더 깊게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어려움과 삶의 더 큰 비밀을 풀어가는 답을 우연처럼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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