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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ite You & Your People 제86호: 새끼발가락이 있었네

HIT 1157 / 정은실 / 2009-02-16


‘나는 새끼발가락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누가 ‘당신은 새끼발가락이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새끼발가락이 있어요.’라고 대답을 하겠지만,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나는 지난 사흘 내내 ‘나에게 새끼발가락이 있구나.’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사흘 전에 냉장고에서 반찬그릇을 꺼내다가 옆에 있던 유리병을 잘못 건드렸습니다. 내 얼굴 높이 정도에 있던 유리병이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서 유리병 가장자리가 왼쪽 새끼발가락을 찍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까지 났습니다. 괜찮겠지, 싶었는데 조금 부어오른 새끼발가락은 구두를 신으면 통증을 일으켰고 운동화를 신어도 불편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렇게 사흘을 불편해하며 알았습니다. ‘아, 주의를 모으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구나.’

탈이 난 새끼발가락은 자기를 보호해달라고 계속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그 신호가 내가 느낀 불편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은 나로 하여금 편안한 신발을 신게 했고, 발을 씻으면서 새끼발가락을 천천히 만지며 ‘네가 여기 있었구나. 그동안 내 무거운 몸을 받치고 서 있느라 애썼다. 구두 때문에 네 모양이 많이 망가졌구나.’라고 마음으로 말하게 했습니다.

새끼발가락의 신호를 느끼다가, 내 몸의 다른 부분들을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새끼발가락만큼 요란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지는 않지만 작은 신호를 보내는 곳들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눈, 위장, 허리, 대장... 그간 잘 살펴주지 못했던 내 몸의 부분들이었습니다.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신호가 없는지 돌아볼 곳은 몸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도, 일상의 과제들도, 가족들도, 바깥세상도, 가만히 주의를 보내보면 여러 신호들이 감지됩니다. 그것은 잘 되어가고 있다는 초록 신호일 때도 있고, 위험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노란 신호일 때도 있습니다.

빨간 신호가 켜졌을 때에야 알아차리면, 부어오른 내 새끼발가락처럼 한참 에너지를 쏟아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노란 신호가 켜졌을 때 알아차리면, 적은 에너지로도 다시 일상의 균형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감기몸살을 조기에 잡거나, 고객 불만을 일이 커지기 전에 해결하거나, 분노가 폭발하려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약한 신호들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강한 신호는 누구나 알아차리지만 약한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의 섬세함을 필요로 합니다. 그 섬세함은 고요한 마음일 때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 고요한 마음에 다다를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의 물결에 휩쓸려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잠시 멈추고 자신과 주변을 섬세하게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 챙김의 습관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서 자기만의 장치들을 만들어놓으면 도움이 됩니다.

나는 작년 늦은 여름에 우연히 강물명상을 하게 되었던 강에서 주워온 하얀 돌을 책상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그 돌을 볼 때마다 계절이 교차하던 그때 그 강물의 촉감과 색깔과 소리와 내 고요했던 마음이 그대로 살아나며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내 의식이 흐르는 대로 세 페이지씩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흐름을 멈추는 그 시간들은 내가 일상에 휩쓸릴 때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을 아주 섬세하게 알아차리게 합니다. 그 알아차림은 하루를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면서도 평온하게 만들어줍니다.

지금 바쁘신가요? 당신의 주변에 온통 빨간불이 켜져 있거나, 혹은 아무 신호도 느껴지지 않나요? 잠시 시선을 창밖의 산과 나무로 돌리거나 혹은 깊게 호흡하며 분주한 마음의 흐름을 멈추어 보세요. 그리고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해보세요. 생각지 못했던 문제나 기회를, 혹은 일상의 아름다움이나 감사를, 혹은 너무 가까이 있어 보지 못했던 자신의 어떤 부분을 발견하게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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