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63호: 어느 아버지와 아들의 소통 이야기
HIT 1077 / 정은실 / 2008-09-10
지난 토요일, 경찰심리상담사 훈련 과정에서 ‘현실요법(Reality Therapy)'을 강의했습니다. 현실요법은 인간행동의 원리를 설명하는 선택이론을 근간으로 해서 사람들이 자기 삶의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상담 및 심리치료 이론입니다. 과거보다 현재에 초점을 두고, 문제보다 원하는 것에서 상담을 시작하며, 잘 구조화된 상담절차(WDEP)를 제시하고 있어서 교육이나 코칭 분야에도 효과적으로 적용되는 이론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Want)을 파악하고, 현재 행동(Doing)을 돌아보고 스스로 자기행동의 효과성을 평가(Evaluation)하여, 새로운 행동을 계획(Planning)하여 실행하게 함으로써, 삶의 통제력을 회복하도록 돕는 현실요법의 원리들을 그날 청중들은 진지하게 경청하며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특히 한 분은 쉬는 시간에 따로 찾아와서 “우리 아이가 가진 삶의 태도를 고쳐주고 싶은데 이 절차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분의 얼굴에는 자식의 잘못된 태도를 깨우치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분의 아들은 이십 대 초반이었고 회사를 다니며 독립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분과 대화를 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편안한 자리를 만들고 아드님의 관심사를 찾아 대화를 시작해보세요. 알고 계신 바가 있으면 ‘그때 그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요즘 지내기 어렵지?’ 이렇게 질문하셔도 좋고, 아는 바가 없으면 그냥 물어보세요. ‘아들아, 요즘 어떻게 지내니?’ 서두르지 말고 많이 들으세요. 가르치고 통제하려 들면 대화는 끊어집니다. 선생님은 아드님 근황을 알게 되실 것이고, 아드님은 자기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충분히 들으신 후에 물어보세요. ‘아들아,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구나. 네가 그렇게 지내는지 아버지가 잘 몰랐구나. 힘들었겠구나. 그런데 아들아, 그 일들 중에서 너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진심으로 궁금해 하면서 사랑을 담아 물어보세요. 아드님은 현재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질문을 해보세요. ‘네가 00을 원하는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너는 뭘 하고 있니, 어떤 노력을 해봤니?’ 아드님은 자신의 현재 행동들을 더 깊게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선생님이 ‘너의 그런 노력들이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니?’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아드님은 자기 삶에 변화가 필요함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아드님과 이렇게 대화를 해보고 싶으신가요? 이런 시간을 앞으로 자주 가지신다면, 선생님은 아드님이 가진 삶의 태도 하나를 고쳐주는 것 이상의 것을 얻게 되실 겁니다.
아드님의 삶은 선생님의 삶보다 많이 길겠지요. 많은 선택의 상황을 만나게 되겠지요. 그때마다 선생님이 언제까지나 아드님 곁에 계실 수는 없겠지요? 판단하며 가르치지 않고 스스로 알아차리게 하는 대화를 하게 되면, 선생님은 아드님이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선택해가는 힘을 갖도록 돕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를 통해서 자신도 머지않아 아버지가 될 아드님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어떻게 사랑하고 존중하며 소통할 수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아, 가장 중요한 것이 있군요. 어쩌면 선생님이 아드님에 대해 이제까지 가졌던 생각이 달라질 지도 모르겠어요. ‘내 아들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이 아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참 생각이 깊구나. 이 아이도 참 열심히 살려고 애쓰고 있구나!’ 그래서 아마도 선생님은 아드님의 문제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드님과의 관계를 더 건강하게 회복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 선생님이 더 행복해지시겠지요?”
대화를 마칠 즈음, 무겁고 날카롭고 염려스러웠던 그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습니다. 그분은 감사하다 말씀하시며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나 또한 좋은 질문을 던져주고 경청해주신 그분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도구를 필요로 하는 분들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번 추석, 그분과 아드님이 따뜻한 소통의 시간을 갖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