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60호: 긴 쉼표 같은 7박8일간의 흙 건축 캠프 단상
HIT 1186 / 정은실 / 2008-08-19
지난 한 주 가족들과 흙 건축 캠프에 참가했습니다. 캠프가 열린 공간은 핸드폰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시골집이었습니다. 거의 매일 내린 비로 빨래도 잘 마르지 않고 빗물로 질척대는 흙 마당을 오가며 실습을 하느라집안에도 흙이 밟히고 샤워를 하기도 쉽지 않고 밤이면 도시 모기의 다섯 배쯤의 위력을 가진 것 같은 시골모기들이 잠을 설치게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10명의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29명의 사람들이 오전에는 이론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흙 건축에 대한 실습을 하고 밤에는 건축과 생태에 관련된 영화를 보면서 7박8일을 보냈습니다. 그곳에 있을 때는 깨끗하고 안락한 일상의 공간으로 어서 돌아오고 싶었는데, 돌아온 지 이틀 만에 문득 그 공간과 그 사람들이 따뜻하게 떠오릅니다.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 영상들을 모아봅니다.
영상 하나. ‘흙을 믿는 사람과의 만남’
흙 건축 캠프를 이끈 신근식 건축사는 흙으로 집을 짓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흙의 물성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캠프 기간 내내 열강을 한 그를 통해서 흙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흙의 종류가 그렇게 다르고 색깔도 다양하고 점토가 많은 흙은 물을 만나면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서 좋은 건축자재가 되고 수많은 흙 건축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흙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 믿음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관점을 새롭게 열어주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영상 둘. ‘흙을 닮은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초중고 학생들, 대학생들,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의사들, 주부들. 좁고 불편한 공간에서 부대끼느라 짜증이 나서 작은 다툼이 있을 법도 했는데 캠프 기간 중에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서로 조금씩 챙기고 배려하면서 캠프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전체의 불편함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첫 만남에 서투른 나는 그 많은 사람들과 깊게 사귀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7박8일간에 가장 큰 아쉬움이 있다면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 것입니다. 함께 살면서, 사람들 속에서 아직도 뾰족뾰족한 내 모습을 봤습니다.
영상 셋. ‘구름을 벗어난 둥글고 밝은 달’
마지막 날 밤, 바람이 비구름을 불어 젖혀 잠시 하늘을 열었습니다. ‘휘영청 달이 밝다는 것’이 어떤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쓰는 말인지를 알았습니다. 깊은 밤, 까만 숲 위로 흐르는 구름 사이로 말갛게 씻은 얼굴처럼 떠오른 둥근 달에 취하여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덕지덕지 끼여 있던 쓸데없는 생각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고요한 적이 참 오래 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이 마음에 또 구름이 덮이면 그 한밤의 달을 떠올려야겠습니다. 맑고 밝은 달이 내가 고요한 마음을 일으킬 때 떠올리는 앵커가 되었습니다.
영상 넷. ‘숲에서의 여러 밤’
캠프장 옆 개울 너머 숲 속에 텐트를 쳤습니다. 그곳이 개미 집 위였는지 둘째 날부터 개미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텐트 옆 나무에 살던 이름 모를 새는 우리는 위협하기 위해서(?) 밤마다 일정 시간이 되면 수차례 푸드득 텐트를 때리고 지나갔습니다. 바스락대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고, 텐트를 두들기는 빗소리에 여러 번 잠을 깨기도 하고, 평평하지 않은 바닥 때문에 허리도 불편했지만 얇은 텐트에 의지해서 빛 한 점 없는 자연 속에 누워 나를 감싸고 있는 공간을 느끼는 기분은 특별했습니다. 개울물이 많이 불어 중간에 철수를 하기는 했지만, 숲의 그 소리와 기운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영상 다섯. ‘행복숲의 첫 건물 백오산방’
이번 흙 건축 캠프 실습은 행복숲의 첫 건물 백오산방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오랜만에 가본 행복숲에서 바라보는 산과 하늘과 나무와 숲이 늘 만나던 친구처럼 편안했습니다. 그 땅의 흙과 나무로 지어지는 그 공간이 자기 안에 이미 있는 씨앗을 찾아 아름다운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첫 공간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행복숲에 두 번째로 지어질 집은 우리들의 집이 되기도 소망했습니다. 백오산방이 일정 내에 잘 마무리되어 ‘씨앗에서 숲으로’ 제3기를, 한 사람의 꿈이 오롯이 담긴 그 공간에서 할 수 있게 되기도 소망했습니다.
흙과 비와 숲과 사람들과 함께 했던 7박8일, 몸은 힘들었지만, 긴 쉼표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흔들리던 중심을 다시 잡으며 조금 더 자유로운 모습으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