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58호: 매달의 서원(誓願), 1년 지속하다
HIT 1233 / 정은실 / 2008-08-03
나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싱그럽게 잘 자라고 있는 나무들에도 죽은 가지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잎이 없는 겨울에는 잘 알 수 없지만 지금 같은 여름이면 잎을 내지 못한 죽은 가지들이 쉽게 보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무 아저씨’라고 부르는 백오(白烏) 김용규 선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병들어 죽거나 사고로 꺾어지는 가지들도 있지만 나무 스스로 전략적으로 포기하는 가지들이 있다고 하는군요. 빛을 찾아 더 넓은 하늘을 얻기 위해 올라가면서 스스로 아래 가지를 떨어뜨리는 소나무처럼, 다른 나무들도 가지를 뻗어나가다가 멈추기도 하나봅니다.
스스로 일부 가지에 양분 공급을 중단하는 나무들 이야기를 듣다가 우리 사람들의 무수한 시도와 포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멈추게 되거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우리는 ‘괜히 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지레 겁을 먹고 시작조차 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잘 자란 나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죽은 가지들도 많이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가지를 내며 성장해가다가 일부 가지를 포기하면서 현재와 같은 균형 잡힌 모양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나무는 일단 가지를 뻗어 공간을 지각해보고 계속 자랄 것인가 멈출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앞일을 다 알 수 없기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도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안 될 것 같은 일도 주변의 상황이 바뀌면서 혹은 내 안에 있던 나도 잘 몰랐던 내 자원들이 눈부시게 발현되면서 그 일을 이루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살아오면서 경험했습니다. 물론 충분히 될 것 같던 일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몇 년간 유난히 많은 가지들을 뻗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새롭게 혹은 깊게 배웠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내 일상의 중심을 잡기 위한 여러 의식(ritual)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가지들 중 어떤 것들은 살아남았고 어떤 것들은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가지들과 죽은 가지들 모두가 함께 지금의 내 모습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번 8월은 그 살아남은 가지들 중의 하나인 ‘매달의 서원 올리기’가 만 1년이 되는 달입니다. 작년 7월 마지막 날에 불현듯 역량연 홈피 자유게시판에 쓰기 시작한 매달의 서원은 지나간 한 달을 돌아보고 새로 맞는 한 달의 초점을 모으는 나의 의식(ritual)이었습니다. 매달의 마지막 날이나 첫 날에 고요히 앉아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일상의 여러 역할과 책임들 속에서 자주 흩어지곤 했던 나의 어지러운 마음을 고요하게 모아주는 귀한 도구였습니다.
삶에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1년간 지속한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군요. 더 긴 세월 키워온 가지들, 더 키워갈 가지들, 새롭게 키우려고 하는 가지들, 이제는 전략적으로 포기할 가지들, 이미 포기했거나 병들거나 바람에 꺾여 성장을 멈춘 가지들을 돌아봅니다.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 어떠하든 모두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내 삶의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