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54호: 좋은 엄마 되기 공부 일주일
HIT 1291 / 정은실 / 2008-07-07
그저께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아이가 기말고사를 봤습니다. 시험을 보고 온 아이의 목소리가 밝아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공부가 재밌기도 한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어서 기뻤습니다. 아이가 평소 학교생활에도 그리 흥미가 없었고 자기는 공부를 잘 못한다는 생각을 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리지만, 아이가 가진 자기한정적인 생각은 아이에게 큰 장애가 될 것 같아서 이번 기말고사 준비는 옆에서 많이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두 시간 아이와 나란히 앉아 공부하기’ 일주일 동안에 참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직접 실험을 해보았거나 경험한 것은 잘 이해했지만 그냥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외워야 하는 것은 어려워했습니다. 수리적 능력은 발달했는데 언어능력이 부족해서 문제를 읽고 이해하는 데에서 자주 실수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눈에 띌 정도로 집중하는 힘이 커져 있었고, 자기가 하는 것을 잘하고 싶어 하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겨나 있었습니다.
일주일간 매일 일정시간 집중적인 시간을 마련해서 아이와 함께 하다 보니 아이의 생각하는 방식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집을 풀다가 답이 틀린 부분에서 아이는 자기가 그렇게 나름대로 문제를 해석하고 답을 한 이유를 말했습니다. 비록 답은 틀렸지만, 정답을 수용하기 전에 자기주장을 하는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또 아이가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힘도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참 뾰로통해서 짜증을 낸 후에는, ‘내가 아까 왜 기분이 나빴는가 하면요, 엄마가 잘했다는 말은 별로 안하고 틀린 문제만 이야기해서 그래요.’라고 따지기도 하고, ‘엄마, 그렇게 말하면 나 무서워요.’라고 말하기도 해서 나를 웃게 했습니다. 이 녀석이 마음도 많이 컸구나 싶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험 준비 과정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아이가 자신감을 회복한 일입니다. 수학문제집을 풀다가, ‘도전문제’라고 따로 표시가 된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만났는데, 내가 봐도 복잡해보여서 ‘그냥 넘어갈래?’라고 했고, 옆에 있던 중학생 형도 같이 풀다가 방정식을 잘못 세워서 실수로 틀렸는데, 아이는 ‘해볼래요.’ 그러더니 한참을 자기 방식으로 풀어서 답을 찾아냈습니다. ‘와! 네 답이 맞았네!’라고 말해주었더니 아이는 ‘내가 풀었어! 내가 풀었어!’라고 환하게 웃으며 참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아이 옆에서, ‘네가 답을 맞힌 것도 잘 한 것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혼자 풀어낸 것이 참 훌륭했다.’고 진심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아이의 얼굴에 또 한 번 그 밝은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간 매일 조금씩 아이의 시험 준비를 도우며 내가 한 일 가운데 잘 한 것은 ‘그저 함께 옆에 있어주기’, ‘아이의 속도를 존중해주기’, ‘칭찬하고 감탄해주기’였습니다. 성적을 높여주기 위해서 아이보다 앞서 조바심을 내며 진도를 독려한 부분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공부를 하면서 좋았던 것은 바로 나였습니다. 인내할 줄도 알고,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더 큰 신뢰를 갖게 되었고, 문제 풀다가 조잘조잘 다른 길로 빠져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며 아이의 학교생활과 아이의 마음속 그림들을 많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아이의 기말고사 준비를 도와주다가, 아이의 마음속에 들어가 함께 생각하며 많이 감탄하며 ‘좋은 엄마 되기 공부’를 하고 왔습니다. 아이의 기말고사는 끝났지만, 아이의 마음속에 생긴 오솔길을 매일매일 손잡고 같이 걸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