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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ite You & Your People 제51호: 비바람 산책길에서

HIT 1265 / 정은실 / 2008-06-18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제부터 이슬비처럼 뿌리던 빗줄기가 굵어졌습니다. 창밖에는 온통 바람입니다. 장마가 데리고 온 바람이 어린 나무의 줄기들을 뒤흔들고 꺾을 정도로 불고 있습니다.

오전 중에 한 시간 남짓 빗길 산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바람 느껴보기,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 듣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안에서 내다보던 것보다 어찌 바람이 심하던지, 바람 방향에 맞춰 우산 운전을 하느라 가끔 나무 한 번씩 바라보며 바닥만 계속 보다가 돌아왔습니다.

산책길 보도에는 나무 위에서 새를 기다리고 싶었을 버찌들이, 좀 더 자라서 향기로운 시절을 맞고 싶었을 아직 푸른 복숭아들이 떨어져있었습니다. 가을 낙엽이 지듯 나뭇잎들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일부 건강한 잎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잎들은 벌레 먹거나 마른 잎이거나 이른 단풍이 든 잎이었습니다. 나뭇가지들도 떨어져내려 있었습니다. 꺾여 떨어진 가지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유월이 되도록 잎을 피우지 못한 죽은 가지들이었습니다.

바람막이를 해줄 그 무엇도 없이 그대로 바람을 맞으며 열매와 가지를 떨어뜨리고 있는 나무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열매를 맺고 키워야 하는 나무들에게 비바람은 분명 큰 시련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비바람은 나무를 키우는 힘인가봅니다. 수백 년 된 나무들에게서 어찌 그리 강인한 기운이 느껴지나 했더니 오랜 세월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러한가 봅니다. 또 그 나무들을 있게 한 씨앗도 그냥 씨앗이 아니라 이런 거센 비바람에 살아남아 가을을 맞이했던 강인한 씨앗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가 봅니다.

이 비바람과 얼마 후 또 다가올 태풍을 이겨낼 가지와 열매들이 향기로운 가을을 맞이하겠지요. 지난 봄 나무가 그렇게 눈꽃 같이 꽃을 피워냈던 것은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살아남을 열매를 통해서 가장 건강한 씨앗을 얻기 위해서였나봅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시련에는 꺾이지 않을 가지에게 지난 봄 잎을 피우게 하여 열매를 안을 자격을 주었나 봅니다.

내 삶에는 어떤 비바람이 있었을까 휘청대면서도 꿋꿋한 나무들을 보다가 물어보았습니다. 그 비바람이 나의 어떤 약한 부분을 아프게 했지만, 그것이 나를 어떻게 더 강인하게 혹은 향기롭게 만들었는가를 물어봅니다. ‘몸살’은 ‘몸을 살리는 것’이라지요. 나무도 상처가 아문 옹이 부분이 더 단단하고 그 부분을 태워보면 더 향기롭다고 하지요. 몸이 아프더라도 마음이 아프더라도 그 아픔이 자신을 더 향기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삶의 아픔들에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비바람이 그친 후, 땅바닥에 떨어진 어린 열매들을 안타까워하기보다, 가지를 꽉 움켜쥐고 견뎌낸 어린 열매들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 열매들이 무럭무럭 성장해가는 모습을 이 여름과 가을동안 지켜보고 싶습니다. 내 안에서 익어가고 있는 튼실한 열매도 그들과 함께 키워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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