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44호: 하루의 사계(四季)
HIT 1314 / 정은실 / 2008-04-27
신록이 눈이 부십니다. 매년 이맘때면 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오릅니다. 육아와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무척 바빴던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밤늦게 귀가를 하다가 보도(步道)에 드리운 짙은 나뭇잎 그림자를 보고는 깜짝 놀라 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어느 사이 나뭇잎들이 젖먹이 손바닥만큼 자라 있었던 것이지요. 그때도 나무를 좋아했는데 ‘나무도 한 번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서 정신없이 살고 있구나!’ 알아차리며 얼마나 놀랐던지 해마다 신록을 만나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아무리 바쁜 일상에서라도 늘 깨어있고 싶다는 생각의 씨앗을 가슴 깊은 곳에 심고 물을 주기 시작한 것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바빠집니다. 나 하나만 잘 챙기면 되던 어린 시절은 짧은 봄처럼 끝나고 마음을 써야 할 사람도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될 일들도 많아집니다. 삶의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기쁨도 늘어나기 때문에 세상은 참 공평하다 싶지만, 때로 그 책임들 사이에서 버거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때 필요한 삶의 기술들 중의 하나가 ‘시간관리’입니다.
요즘 나는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곧 자기 삶을 관리하는 것이라는 메시지에 100% 동감합니다. 그리고 효과적인 시간관리란 자연스러워야 함을 느낍니다. 억지로 시간을 통제하려 할 때 삶은 피곤하고 힘든 과제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자연스러워야할까를 고민하던 중에 하루가 사계(四季)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하루는 새벽과 이른 아침, 한낮, 저녁, 그리고 밤, 이렇게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각 부분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특성을 닮았습니다.
새벽과 이른 아침은 봄을 닮았습니다. 올해는 어떤 작물을 심을까 고민하고 농기구를 정비하고 흙을 갈고 설레는 마음으로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하루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하루의 일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준비와 희망이 없는 아침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한낮은 여름의 시간입니다. 아침에 세운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하며 그 일과 하나가 되어 몰입과 노동의 기쁨을 발견하며 성장하는 시간입니다. 깊은 몰입으로 성장을 일구지 못하는 한낮, 정신과 육체를 움직이는 기쁨을 알지 못하는 한낮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저녁은 가을과 같습니다. 하루의 과제를 마무리하며 내 안의 배움과 성장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배우고 성장하지 못한 하루의 저녁은 결실 없는 가을처럼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밤은 깊은 휴식으로 봄을 준비하는 겨울과 같은 시간입니다. 훌훌 잎을 털어버리는 나무들처럼, 옷과 함께 모든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벗고 온전히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깊은 숙면의 시간을 갖습니다. 건강한 새순을 키워내는 겨울처럼, 밤은 우리의 또 다른 아침을 신선하게 시작하게 합니다. 지나간 하루를 온전히 놓아버리고 새로운 하루를 품지 못하는 밤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제 모양대로 아름다울 때 자연이 건강하게 순환되듯 나의 하루 또한 그러함을 발견합니다. 사실 나도 봄의 신선함을 여름의 몰입을 가을의 결실을 겨울의 고요함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특히 나뭇잎이 하늘을 덮어가는 것도 보지 못했던 30대 초반의 나는 빠르게 성취하고 싶어 하며 늘 조급했습니다.
그때 나의 하루에는 아주 짧은 봄과 치열한 여름과 가을 그리고 자주 공허했던 겨울이 있었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습관적으로 출근을 하던 그때 신선한 아침은 드물었습니다. 봄이 없이 시작되는 여름처럼 바로 바쁘게 일상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많은 과제들로 쫓겼던 한낮, 깊은 몰입의 기쁨을 누렸던 때가 많지 않았습니다. 저녁은 하루를 돌아보기보다 못다 한 것들을 자책하며 일거리나 공부거리를 붙잡고 조급해할 때가 많았습니다. 밤은 휴식과 기대보다 내일에 대한 긴장과, 뿌림과 거둠의 법칙에 대한 회의로 뒤척일 때가 많았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신뢰하는 요즈음, 나는 새벽과 이른 아침의 기쁨을 봄처럼 자주 누리려고 합니다.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편안한 방법으로 명상을 하거나 책을 읽습니다. 꼭 해야 할 과제를 점검하고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한낮, 하고자 했던 과제에 몰입하며 노동이 주는 기쁨을 자주 누립니다. 저녁, 하루를 돌아보며 그날의 일과를 마무리 짓습니다. 밤, 못다 한 일들을 자책하지 않고 그냥 내려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숙면의 시간에 들어갑니다.
여러분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는지요? 어떤 기준으로 여러분 자신의 자연스러운 하루를 창조하고 계신지요? 여러분의 하루 관리법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