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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ite You & Your People 제35호: 낯선 이의 시선으로 본(本)과 말(末)을 보다

HIT 1304 / 최학수 / 2008-02-25


 

지난 주에 인터뷰가 있어서 7년간 몸 담았던 그룹사 빌딩을 오랜만에 방문했습니다. 일찍 도착해서 잠시 시간 여유가 있어서 빌딩 지하 아케이드를 둘러보았습니다. 어느 사이 저의 눈은 한가지 관점에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변하지 않은 것과 변한 것.’ 약국과 여행사, 서점 등은 그대로였습니다. 서점은 매장의 규모와 진열 방식,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 모습까지 똑같았습니다. 변하지 않은 것보다 변한 것이 더 많았습니다. 전통찻집, 큰 문구점 등이 없어지고 요즘의 젊은 세대들의 입맛에 맞게 파스타, 일본식 우동 등을 파는 새 가게들이 생겼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개성 있는 헤어스타일의 젊은 남자 직원들, 한국어를 쓰지 않는 다양한 인종의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최근의 사회변화들이 빌딩의 지하에 들어선 가게들과 휴식 중인 사람들에게서 읽혀졌습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변화는 사무실 밖에 까지만 온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무실 레이아웃, 컴퓨터와 마주하고 묵묵히 일하는 모습들, 조용한 분위기. 그런데 보고에 관한 인터뷰를 하면서 사무실 내 업무에 있어서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대로인 것은 보고 작업에서 어려운 요소들과 그것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내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상사의 업무지시 의도를 파악하는 일, 짧은 시간에 핵심을 요약해서 쓰는 일, 원하는 자료와 정보를 구하는 일, 상사와 호흡을 맞추는 일, 유관부서의 협조를 얻는 일들은 여전히 많은 에너지와 집중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달라진 모습도 많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일의 처리속도가 더 빨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보고지시 후에 3, 4일도 걸리던 것이 요즘은 당일 몇 시간 내에 처리되고 있었습니다. 보고서의 간소화도 눈에 띄었습니다. 3장 이내의 보고서가 여러 회사에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화려한 파워포인트 보고서 작업으로 인한 폐해가 많이 줄었습니다. 어떤 회사는 형식을 갖춘 보고서가 없이 필요한 근거자료 몇 장만 가지고 구두로 상사와 토론을 하면서 보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상사와 보고자가 함께 나누는 질 높은 소통작업이었습니다. 생각과 말이 주가 되고 보고서는 필요 시 제시되는 보조자료였고, 보고행위 그 자체 보다 실행과 실행을 통한 성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고자 개인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형식을 갖춘 보고서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자기 업무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기 머릿속에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하는 작업은 더 강화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보고의 본래 목적이지만 도구가 목적이 되면서 생겼던 기존의 바람직하지 않은 보고관행들이 반갑게도 실제로 현장에서 많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옛날 근무했던 장소를 오랜만에 방문하니 달라진 것과 그대로인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변해야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즉 무엇이 본(本)이고 무엇이 말(末)인지도 새삼 보게 되었습니다. 이따금 이렇게 하루하루가 아니라 긴 시간의 길이로, 낯선 이의 눈을 가지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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