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11호: 고슴도치 엄마
HIT 1366 / 정은실 / 2007-09-09
2주일쯤 전에 둘째 서웅이가 태권도 학원에 다녀오더니 명함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엄마, 이 아저씨가 전화해 달래요.” 명함을 보니 어떤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것 같은데 서웅이 혼자만 받은 것도 아닌 것 같고 서웅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무심히 넘겨버렸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 업체의 매니저라는 사람으로부터 서웅이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이가 귀엽게 생겨서 어린이 광고 모델로 활동을 해보면 어떠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받은 뜻밖의 전화라서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했더니 그저께 또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카메라 테스트는 한 번 받아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서웅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렇게 귀엽게 생겼나? 집에서는 활개를 치고 다니지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쑥스러움이 많은 아이라 광고 모델이 된다고 하더라도 잘 활동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데, 엔터테인먼트 업체 매니저의 눈에 들었다고 하니 다시 한 번 아이의 모습과 행동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유난히 뽀얀 얼굴에 동그란 눈, 코, 입, 염색을 한 것 같은 갈색 머리, 포동포동한 뺨. 논리적인 형과 다르게 정서적인 면이 발달하고 그때 그때의 감정이 표정으로 몸으로 잘 드러나는 아이. 고슴도치 엄마 눈으로 보기에는 무척 귀엽긴 합니다. ^^
서웅이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혹시 나중에 자기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자기 반 친구들이 보면 부끄러울 것 같다면서 처음에는 싫어하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형이 ‘너 잘 되면 돈 많이 번다.’ 그랬더니 한 번 해보겠다는 겁니다. (서웅이는 용돈을 모아서 만든 통장에 형보다 더 잔고가 많습니다. 누구를 닮았는지 돈 버는 일에 벌써 관심이 많습니다.)
이제야 친구들과의 관계와 공부하기에 적응해가기 시작한 서웅이에게 학교 외 활동은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 시기를 놓쳐 버려도 될 만큼 예능 쪽의 일이 평생의 업이 될 만큼 아이에게 ‘끼’가 있어보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카메라 테스트를 한 번 받아보는 것은 어린 시절의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기는 합니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체의 오디션 제의에 아홉 살 서웅이의 미래에 요 며칠 특히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여봅니다. 서웅이가 뭘 잘 하나, 뭘 하고 싶어 하나, 이다음에 어떤 모습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을까, 그때를 위해 지금 어떤 건강한 씨앗들이 싹틀 수 있도록 도와야 할까.
부모의 역할은 씨를 뿌리는 것도, 그 싹이 잘 올라올 수 있도록 흙을 치워주는 것도, 잡초를 뽑아주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씨앗들은 아이 안에 다 있습니다. 또 그 씨앗의 싹은 제 힘으로 흙을 뚫고 나와야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가 잡초라고 판단한 것이 아이만의 고유한 싹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해야 할 것은 그저 늘 마음을 다해 지켜보며 모든 자원을 잉태하고 있는 흙과 새싹을 밟아버리지 않기, 격려와 애정으로 물을 뿌려주기, 조건 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거름주기, 혹 태풍에 쓰러진다면 일으켜 세워주기,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기...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서웅이를 보며 무한한 씨앗들과 뾰족한 싹들을 봅니다. 그리고 그 싹이 한 그루 싱그러운 나무가 되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광경을 꿈꾸어봅니다. 참 아름다운 풍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