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ite You & Your People 제7호: `작은 나`를 느낄 때
HIT 1372 / 정은실 / 2007-08-12
며칠 전 저녁의 일입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주방에 있던 제 옆으로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이가 다가왔습니다. 엄마가 뭘 만드나 궁금해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종알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언제 자기가 작아진다고 느껴요?” 순간 이 녀석이 많이 컸구나 하는 기특한 생각이 들면서 한편 멈칫했습니다. ‘나는 내가 언제 작아진다고 느끼지?’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자기가 언제 작아진다고 느끼는지를 같이 이야기해봤습니다.
아직 아홉 살인 막내는 ‘나보다 큰 애 앞에 있을 때’라고 나이답게 대답을 했습니다. 질문을 했던 큰 아이는 ‘네 살이나 차이가 나는 동생한테 졌을 때, 엄마 아빠한테 혼날 때, 나보다 큰 애 앞에 앉았을 때, 아! 그리고 나는 달걀 잘 못 깨는데 엄마가 그냥 톡 쳐서 달걀 깰 때’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빠는 ‘추진력이 강한 사람을 만나거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만났을 때’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엄마인 저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내가 감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인품이 훌륭한 사람을 만났을 때’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그날 큰 아이에게 좋은 질문을 했다고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제 마음에 여러 날 남아서 계속 떠올랐습니다. ‘나는 언제 작아지나, 언제 내가 작다고 느끼나......’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천년이 넘었다는 용문사 은행나무를 쳐다보다가,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셨다는 말씀을 듣다가, 대의나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헌신하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보다가, 깊은 산골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보다가, 천재지변 앞에서 무력한 사람들을 보다가,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중요한 의사결정 앞에서 주춤하는 나를 보다가, 신입사원 시절 유능한 선배들을 보다가, 학창시절 똑똑하고 예쁜 친구를 부러워하다가, 어린 시절 뭐든지 다 잘 해내시던 부모님이 일을 하시는 것을 보다가, ...... 아, 살아오면서 내가 작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던 적이 참 많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작아지는 느낌, 내가 작은 느낌’이 나를 키워온 중요한 경험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느낌을 통해서 자연과 우주와 신성한 존재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의 나를 넘어서서 더 성장하고 싶어 하는 내 욕망을 알아차렸습니다. 우주 속의 티끌 같은 내 존재를 보며 작아지기도 했지만 내 안에 있는 소우주를 발견하며 커지기도 했습니다. 천년 고목 앞에서 백년을 살지 못하는 삶을 느꼈지만 그것을 통해 짧은 생의 소중함과 겸허함을 배웠습니다. 큰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나는 그처럼 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나의 표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작은 나’를 느끼시나요? 그럴 때, ‘작은 나’를 부족하다고 평가하며 마냥 자책하거나 억압해버리기보다는 그 뒤에 숨어있는 ‘큰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크다’, ‘작다’는 내 안에 어떤 기준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평가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평가 자체가 아니라, 그 평가를 일으킨 나의 기준, ‘더 나은 나에 대한 바람(want)’입니다.
앞으로 ‘작은 나’가 느껴질 때 가만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바람들이 그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요. 내 아이들이 ‘작은 나’를 느낄 때도 가만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작은 나’를 질책하기보다 그 뒤에 숨어있는 ‘큰 나’를 격려하고 밝혀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