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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HIT 1028 / 최학수 / 2007-04-01


 

올 3월에 미국에서 열흘간 진행되는 의식과 마음 수련 교육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있었던 이야기다.

어느 날 저녁 7시,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마치고 파하는데, 약간 안면을 익힌 외국인 아줌마 두 명이 밖에 나가 식사할 계획인데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같이 가자고 했다. 괜찮을 것 같아 바로 응낙하였고 그들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모아 9명이 저녁 식사에 동행하게 되었다. 아홉 중 셋이 한국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미국, 이스라엘, 호주, 인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들이었다.

일행은 택시를 불러 타고 30여분 떨어진 인도 식당으로 갔다. 은근히 택시비를 어떻게 처리하나 궁금했는데, 기사 팁까지 포함한 택시비 총액을 정확히 9로 나눠 분담케 하였다. 예상했던 터였지만, 어려운 나눗셈을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돈을 모으는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한 진지했다. 크지 않은 돈을 처리하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침내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하는데 동행했던 인도인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인도 음식을 잘 모르는 듯했다. 음식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메뉴를 보면서 사뭇 진지하게 웨이터와 인도인에게 에피타이저와 메인디쉬, 소스, 마실 것 등에 대해 꼬치꼬치 물으면서 각자 선택을 해나갔다. 나로서는 이미 배가 고플 대로 고픈 시간에 저리 시간을 쓰나 싶었지만 그들은 시간은 개의치 않는 듯 너무나 열심히 각자의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한 두 명이 메뉴를 고민하고 정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서로 이름과, 사는 곳, 자식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내 순서가 되었을 때 나는 느끼하지 않고, 감자와 닭고기가 있고, 밥과 적당히 매운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나의 선호를 인도인에게 이야기하고 이런 것들을 감안하여 2가지 음식을 추천해 달라 부탁했다. 그가 추천한 2가지 음식 중 하나를 감으로 정한 뒤 나는 다른 두 한국인에게 물었다. 예상대로 그들은 ‘같은 걸로’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3인의 메뉴가 바로 결정되었고 우리는 보란 듯이 세 사람의 음식을 가장 짧은 시간에 주문하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나는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하며 흐뭇해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다음의 외국인들은 여전히 하나씩 열심히 묻고 설명 듣고 선택하는 그들의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 해서 우리 아홉 명이 웨이터에게 음식을 주문하기까지 무려 25분 이상이 걸리고 말았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한국 같으면 벌써 다 먹고 자리를 뜰 텐데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주문한 음식은 다시 꽤 시간이 지난 뒤 나왔고 그 사이에 우리로 치면 호떡 같은 게 제공되어 그나마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워낙 배가 고팠기 때문인지 음식은 맛이 있었다. 먹는 도중 각자가 주문한 음식과 음료 중 일부를 옆자리에 권하고 서로 나눠 먹는 일이 있었는데, 사실 그건 뜻밖의 장면이어서 나로서는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하고, 이야기 틈틈이 음식을 먹은 후, 우리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갔다. 너무나 당연하게 더치페이였다. 총액을 9로 나눠 계산할 줄 알았는데 계산대에 가보니 이미 9명 각각에 대한 주문내용과 금액이 적혀 있었다. 9명이 차례로 자기가 주문한 것과 금액을 확인하고 돈을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물론 그 사이 주인장과 먹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고 - 택시비 지불에 대해선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 시계를 보니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그리 배불리 먹지 않아선지, 저녁 먹은 게 소화가 다 되어선지, 씻고 자리에 누우니 왠지 배가 조금 고픈 느낌이었다.

외국인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이전에 미국인들과 함께 식사한 적도 여러 번 있어 대략 그들의 음식 문화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들의 개인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럿이 함께 음식을 주문하고 값을 치르는 이들의 행동과 관습이 어쩌면 우리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낳았을까.

그들은 9명이 함께 저녁 식사를 했지만 마치 혼자 와서 저녁을 먹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혼자 왔을 때와 여럿이 함께 왔을 때, 그들의 메뉴 선택과 지불 방식이 어쩌면 같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결코 전체 의견을 묻지 않았고 각자 자신의 선호에 충실하게 선택을 했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혼자 식당에 갈 때와 여럿이 함께 갈 때 – 식당에 혼자 가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긴 하다 - 우리들의 메뉴 선택과 음식 값 지불 방식은 조금 변하는 게 통례다. 심지어 몇 명이 동행하느냐, 동행자가 누구인가도 중요한 변수이다. 음식을 정함에 있어 함께 간 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조정하거나 일행 다수의 선호 메뉴를 중심으로 의견을 모아가는 게 우리네 상식이고 그것은 일종의 예절처럼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보다는 단체 속의 일원으로서 행동한다. 그것이 몸에 자연스럽게 밴 사람들이다.

손님을 대하는 종업원의 대응 방식도 그들과 우리는 사뭇 다르다. 미국의 그 식당 종업원과 주인은 우리를 9명의 단체 손님이라기보다는 한 개인 손님인 것처럼 대했다. 전체 손님에게 한꺼번에 인사하고 주문 받고 계산하지 않았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인사하고 서비스했다. 나중에 종업원에게 기억 검사를 한다면, 그들은 아마 9명의 단체 손님이 있었다는 것보다는 9명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을 더 잘 기억해 낼 것이다. 그들이 손님과 나누는 말, 시선 그리고 몸짓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국 식당에선 일단 인사도 전체에게 한다. 메뉴 설명이나 주문 받기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지 않는다. 아예 일행이 메뉴를 정할 시간을 주고, 다 의견이 모아진 다음에 주문을 받는다. 누가 무엇을 시켰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사람 수와 음식 수가 정확히 맞는지가 중요하다. 음식 값 계산도 누가 얼마인가가 아니라 전체 금액이 얼마인가가 중요하다. 9명을 한 명 대하듯 한다.

음식을 고르고 음식 값을 지불하는 그들의 모습들 그 이면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어떤 신념이 자리하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 ‘개인’이 아닐까. 어쩌면 이토록 철저히 ‘개인’이 자리할 수 있을까. 개인은 존중되어야 하고 개인의 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 믿음이 있는 것 같다. 집단이 들어오면 절대 안 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듯처럼 보인다.

이러한 그들의 개인주의는 식당을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발현되고 있을 터인데, 문제는 그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이 무비판적으로 우리들의 삶의 영역으로 이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식당에 ‘개인’이 있다면 한국 식당에는 ‘집단’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우리 핏속에는 이 같은 집단의식이 자리하고 있는데, 조직 운영, 성과 평가, 사람 관리는 어떠한가. 상호 부합하고 있는가. 미국의 그 철저한 개인주의 토양에서 발전한 그들의 인사 시스템이 우리에게도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우리에게 맞는 성과 중심의 신인사 시스템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에게 개인과 집단이 조화를 이루는 지점은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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