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를 읽고
HIT 264 / 최찬빈 / 2016-01-01
책이름 :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글쓴이 : 피터 드러커
옮긴이 : 이재규
펴낸이 :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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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흔히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가지고 있는 결함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나 상식들을 마치 새롭고 대단한 사실인 양 보기 좋게 포장해서 엮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사실 자기계발서를 읽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더 향상시킬 수 있는지 정말 몰라서 자기계발서를 찾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상투적인 이야기들의 열거에서 그친 책은 읽을 때만큼은 그럴싸할지 몰라도 다 읽고 나서 독자가 변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론’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저자의 경영과 자기관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책의 서두에서 나타난 ‘지식근로자’에 대한 정의와 ‘육체노동자’와 대비시켜 드러낸 역사적인 맥락의 제시는 저자가 허투루 어려운 말을 지어내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또 육체노동자와 지식근로자의 업무의 차이가 단순히 몸을 쓰느냐 머리를 쓰느냐가 아닌, ‘목표달성 능력’의 필요 여부라는 점을 지적한 부분은 책의 전체 주제를 관통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사실 이 책도 책의 모든 내용이 새롭고 놀라운 것만으로 채워져 있던 것은 아니다. 분명히 본능적으로, 혹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 역시 어느 정도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다만 그러한 내용들이 저자 본인이 체계화한 구조 아래서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었기에 그의 주장과 의견을 뒷받침하는 논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저자가 근거나 예시로 나열한 잔가지보다는 책 전반의 큰 틀과 흐름에 관한 내용, 그리고 그것에 대한 소감을 중심으로 구성할 것이다.
본문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지식근로자에게 그 어떤 것보다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상상력이 아닌 ‘목표달성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저자의 태도와 책 전반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목표달성능력이야말로 지식근로자의 능력 그 자체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 책에 의하면 목표달성능력은 다섯 가지 척도를 통해 측정되는데 (이 부분은 나의 자의적인 해석이다. )첫 번째 척도는 시간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지식근로자는 자신이 맡은 일을 검토하기 앞서 먼저 가용 시간을 고려한다.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에서 그쳤으면 여타 자기계발서와 차별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의 시간 활용에 관한 생각은 어느 곳에서 본 것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이었다. 저자는 시간 활용을 하기 위한 과정 또한 세 단계로 제시했는데 각 단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간을 기록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지식근로자는 자신이 맡은 일을 검토하기 앞서 먼저 가용 시간을 고려한다. 또 계획 수립 이전에 사용 가능한 시간을 파악한다.
시간을 관리한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에 있어 비생산적인 것들을 제외한다.
시간을 통합한다.
다소 생소한 이야기인데, 2단계에서 얻어진 활용 가능한 시간을 가능한 한 큰 연속 단위로 통합한다. 비슷한 업무끼리 묶어 계열화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첫 번째 척도가 시간이었다면 두 번째 척도는 (공헌할 목표에 대한) 노력이다. 얼핏 여기까지는 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다음 내용이다. 활동의 초점을 외부 세계에 맞춰 노력을 업무 그 자체가 아닌 결과에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해야 할 일에서 생각이 그칠 게 아니라, 완수된 일로부터 도출될 결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여기서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데, 좋은 인간관계는 생산적인 관계가 되어 주며 공헌에 초점을 맞추는 행위 그 자체가 효과적인 인간관계에 필요한 네 가지 기본 조건인 커뮤니케이션, 팀워크, 자기계발, 인재육성을 충족시켜준다.
세 번째는 바로 강점의 활용이다. 짧게 요약하면 약점을 바탕으로는 성과를 올릴 수 없으니 약점은 최소한의 보완을 하는 수준에서 그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개개인은 강점과 약점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적재적소에 적절한 인재를 배치하는 것으로 약점은 무의미하게 만들고 강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능력 있는 최고경영자는 약점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닌, 강점을 극대화하는 인사 행정을 펼친다.
이러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네 가지를 저자는 언급한다. 첫 번째로 과업이나 업무에 결함이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잘못 설계된 직무는 자칫 사람을 죽이는 직무가 된다. 애초에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일에 목을 메다가 모든 것을 그르치는 일은 몇 번 봐 온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목표 수준을 높고 여유 있게 설정하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목표는 개개인의 강점을 자극한다. 또 그들이 그들 최대한의 강점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한다. 목표 설정에 있어서는 사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 나오는 베포 할아버지의 인생관처럼)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부터 천천히 달성해 나가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저자의 경우처럼 높고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굳이 절충점을 찾자면 이상과 궁극적인 목표는 높게 잡되 실행에 있어서는 한 걸음 한 발짝씩 천천히 나아가면 되는 걸까?
세 번째는 직무의 실체 파악에 앞서 휘하 지식근로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다름아닌 인사고과제도임을 저자는 언급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인사고과제도가 이를 실행하고 있지 못함을 저자는 함께 지적한다. 인사고과제도가 강점의 활용이라는 척도를 높이는 데 공헌하려면 제도가 근로자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강점을 밝히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함을 일본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 이러한 실체는 ‘잠재력’이 아니라 ‘실적’을 통해서 파악해야 하는데 이는 ‘잠재력’은 그저 ‘가능성’을 다른 말로 풀어 쓴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 번째는 강점을 확보하는 것의 대가는 약점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챕터 서두에 쓰인 문구 ‘높은 봉우리 옆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다.’가 네 번째 꼭지의 내용을 어느 정도 드러낸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근다는 옛 속담이 경고하듯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끌어안을 각오 없이는 과실을 수확할 수 없을 것이다.
강점의 활용에 이은 네 번째 척도는 ‘집중’이며, 중요한 것을 먼저 해결하는 능력으로 풀어 쓸 수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시간은 항상 적자 상태이며 공급이 수요에 비해 모자라다. 따라서 업무가 많은 최고경영자나 지식근로자는 중요한 업무를 우선으로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지식근로자는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은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 진행 중인 업무라고 할지라도 지속할 가치가 없는 일이라면 과감히 중단해야 하며 극단적으로는 ‘전에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선뜻 ‘yes’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멈추어야 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뒤에 언급되는 ‘우선순위 설정에 필요한 것은 분석이 아닌 용기다.’라는 문구와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우선순위 결정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는 선뜻 동의하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곱씹어 보면 맞는 말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나간 일에 얽매여 그르친 일은 개개인은 물론 수많은 집단에서도, 그리고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어 왔으니까.
다섯 번째 척도는 의사결정이다. 의사결정은 최고 결정권자에게만 주어진 권한이라 조직에서라면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관계없는 내용이 되겠지만 이 책은 자기경영노트다. 자신의 일을 최종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므로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면 주목해야 할 내용이 나오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의사결정의 두 가지 사례는 모두 개별적이고 지엽적인 고려 끝에 나온 결정이 아닌, 개념적이고 원론적이고 원칙적이며 전략적인 결정들이었다. 어려운 의사결정을 앞두었을 때 사사로운 것에 얽매이기보다는 좀 더 큰 관점에서 사태를 내려다볼 것을 시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의사결정은 자칫 자기합리화로 쉽게 흘러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는 했다. 사실 원론적인 대의명분을 따진다면 이유를 붙이지 못할 일은 별로 없기에 자기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의사결정에 있어 놓치지 말아야 할 디테일을 흘릴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서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