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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 철학을 생각한다

HIT 272 / 최학수 / 2014-08-21

누구나 한번쯤 철학을 생각한다 [남경태 저]

어찌 한번 뿐이랴. 생의 중요한 길목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알 수 없는 어두움이 짓누를 때, 궁극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물 때 나는 철학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답이 없다는 걸 알고 이내 관심을 접었으나 그것은 계절병처럼 다시 도지곤 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무엇인가, 진리는 있는가, 신은 존재하는 걸까,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세상은 왜 이리 부조리하고 부정의한가, 앎이란 무엇인가, 참다운 앎은 가능한가... 질문은 이어졌고 답은 찾아지지 않았다. 내가 어렵사리 찾은 답이라곤 답, 절대적인 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무위, 염세, 불가지, 무망으로 흐를 위험이 컸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어느 지점 이상으로 가기를 주저했다. 나, 세상, 인식에 관한 사유는 미결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돌이켜보니 대학 때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흥미 있고 좀 지루하게 읽었던 것 같다(책이 꽤 두꺼웠지 아마)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적 욕구를 채워줬던 흡족함을 떠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교양 필수과목 '철학'은 알 수 없었고 (아마 강사도 그러지 않았을까) 의미도 없었고 교양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안하느니 못했다.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앎에 대한 궁금함과 질문들이 역사 이래 세세연년 이어져온 철학적 주제들 (혹은 그 단편들)이었다는 걸 알게 해줬다. 물론 철학자들의 사유가 훨씬 더 치열하고 궁극적이고 풍부하고 체계적이었지만 말이다. 누군가 고민을 함께 했다는 것이 나에게 너무도 큰 위안이 되었고 그들의 사유 과정과 결과가 내 질문에 대한 답 혹은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이 책으로 미결의 과제가 완결된 것은 아니다. 완결보다 더 중요한 걸 깨닫게 되었다. 절대 진리 없음에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열림과 창조, 자유의 가능성으로 보게 되었다. 인식의 전환은 '가는 데까지 담담하게 갈 수 있으리라'는 다짐으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책을 읽고 난 뒤 생각을 정리하거나 앎을 명료화할 수 있었던 게 좋았지만, 그 못지않게 의미 있게 경험한 것은 책을 읽는 과정이었다. 읽고 배우는 철학이 아니라 내 생각을 찾아보고 더 확장하고 그 끝까지 가보는 여행 같았다. 지적 모험의 느낌이 읽는 내내 들었다. 읽는 동안 책은 나와 동행하는 스승이었다. 저자의 박학다식과 자유자재한 글, 깊은 철학적 사유, 일관되고 분명한 관점에 매료된 덕분인 듯 하다.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쳐볼 것이다. 두고두고 대화할 책 동무다.

이 책은 철학에 관한 역사서이고 개론서이지만 그 이상이다. 저자가 높이 평가한 니체, 마르크스를 나는 더 읽고 싶어졌다. 개론서로서 이 것 이상 바랄 수 있을까?


사족- 한 주제에 관해 일목요연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깊이까지 빠뜨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국내 저자가 있다는 게 놀랍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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