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HIT 1086 / 최학수 / 2007-09-20
제목 :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원제 : Stumbling on Happiness
저자 : 대니얼 길버트
역자 : 서은국, 최인철, 김미정
출판사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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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급 심리학자의 대중적 글쓰기의 전범을 보고자 한다면 이 책을 권하겠다. 행복이라는 주제아래, 그 주제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실험과 연구 결과들이 탄탄하게 꿰어져 있고, 학술적 사례를 가까운 실생활의 에피소드로 연결하여 지금 나의 문제로 성찰하게 하며, 인상적인 글 표현과 기교 그리고 유머로 읽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연모하는 상대와 결혼한다면,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와 같은 책을 한권 쓴다면, 노년을 걱정하지 않을 경제적 여유를 확보한다면, 고단한 몸 편히 뉘일 내 집 하나 마련한다면, 남들이 알아주는 학교에 입학한다면, 남들 앞에서 긴장하지 않고 청산유수처럼 말할 수 있다면, 쉬 피로하지 않을 건강과 체력이 있다면...` 이렇게 우리는 행복의 조건들을 나열한다. 이것만 이룬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하고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원하던 것을 이루면 우리는 행복할까. 행복할 이도 있겠지만 다수는 아닐 것이고 적어도 기대했던 만큼 행복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행복에 대해서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가 왜 이렇게 다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오직 인간만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상상 능력`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탁월함의 원천이자 동시에 행복에 관한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미래를 상상하는 이 비범함을 소유한 인간은 그 능력을 사용하면서 수많은 오류와 실수를 범한다.
상상은 매우 자동적이고 신속하게 일어나서 상상의 결과물들을 회의적으로 따져보지 않는 오류를 범한다. 철수와 영이가 온갖 역경을 딛고 행복한 결혼에 골인하는 그림에는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이 가득찰 것이다. 현실의 고단한 직장 생활, 따분한 일상, 귀찮은 설거지와 청소는 사라지면서 말이다.
상상의 두번째 결함은 미래의 상상이 현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서 나타난다. 현재의 현실 경험이 워낙 강력해 미래에서 바라보는 방식이 현재에서 바라보는 방식과 다를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마치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서 평가하듯이 미래도 우리는 그렇게 한다. 노예를 부린 제퍼슨을 현재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그것은 마치 1970년에 안전띠를 차지 않은 누군가를 지금 와서 체포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합리화가 상상의 세 번째 결함이다. 이는 너무도 교묘하고 전방위적으로 펼쳐져 자신도 모르게 진행된다. 자신에게 유리한 특정 정보에 주의를 더 기울이고, 기억을 왜곡하고, 없는 것을 가공해 만들어내는 두뇌와 감각기관의 작동에는 자존감을 보호하고 고통을 경감시키려는 심리적 면역체계가 자리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상상 오류를 줄이기 위한 처방은 나의 독특함에 의존하기보다는 이미 경험한 타인의 견해를 신뢰하라는 것이다. 나는 남과 달라 하면서 내 상상으로 행복과 감정을 판단하여 하지 말고 이미 경험한 타인의 말을 믿어 보라는 것이다. 이치에 맞는 말이나 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인가. 나의 상상, 나의 느낌, 나의 판단을 포기하라니. 설혹 처방을 받아 들인다 해도 영악한 심리적 면역체계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까. 미래의 상상에 행복을 저당 잡히지 말고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으라, 이게 더 설득력 있는 처방이 아닐까 싶다.
행복에 관한 인간의 상상과 과학적 사실들을 아는 것이 우리의 행복을 늘려줄까 혹은 위협할까.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생리적 심리적 기제를 안다는 것은 나를 긍정하게 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나와 너의 나눔이 가능할까 회의하게 한다. 인간과 나의 속살들을 알아가는 것은 흥미진진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생명체의 진화 매커니즘에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그 매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심리 실험을 고안하는 심리학자의 뇌를 생각하면 웃음과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여러 한계를 가지지만 그 한계를 탐구하고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인간이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는 것은 안다는 것은 다시금 겸허함을 생각하게 한다. 실로 우리는 행복의 탄탄대로를 질주하는 존재가 아닌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그런 존재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