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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루던 일
HIT 537 / 교산 / 2014-04-09
누구에게나 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하기 싫어 미루는 일이 있다. 나에게는 건강검진이 그렇다.
회사 생활을 접고 근 10년이 되어가는 동안 딱 한 번 검진을 받았다. 건강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다가 미루는 병까지 더해진 탓이다.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왜 없었을까만 스스로 검진센터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나에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지인이나 지인의 가족이 암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들어도 그때일 뿐, 검진센터 가는 길은 나에게 먼 길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드디어 건강검진을 받았다. 아주 가볍게 말이다. 비결은 단순했다. 검진센터에서 걸려온 권유전화에 바로 '예스'해버렸다. 이렇게 간단하다니! 그간의 경험을 통해 미루고 미루던 일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예스’ 하는 게 상책이란 걸 터득한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은 뭔가 조금이라도 '해야지' 하는 감이 올 때, 혹은 우연처럼 어떤 계기가 마련될 때에, 제꺼덕 해버리는 게 답이다. 이모저모 재면 결국 또 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 마련. 내키지 않는 일의 경우, 하고 싶은 때나 해야 하는 ‘적기’란 여간해선 오지 않는다.
하는 김에 제대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위내시경 검사라는 걸 추가했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에, ‘그냥 해보죠 뭐.’ 라고 했다. 수면 내시경으로 할까 짧은 순간 고민이 되었지만 왠지 그냥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가 내 후두부, 식도를 거쳐 위까지 들어가는 느낌이 어떨까 궁금했다. 그냥 하면 힘들 거라는 걱정보다, 그 힘듦이 어떤 건지, 내 몸이 이물감을 느끼는 감각이 어떨지에 대한 궁금함이 더 컸다. 그 결정 역시 오래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 순간 조금 더 쏠리는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긴장과 기대를 갖고 맞이한 그 2~3분 동안의 시간. 약간 어두운 데로 데려가 눕게 하고 목으로 액체를 넣었다. 마취 성분이 있는 듯 목구멍 깊은 곳이 묵직하게 무뎌지는 느낌이 올라왔다. 그 감각이 조금씩 퍼져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윽고 마우스피스 같은 것을 물게 하고 가운데 구멍 사이로 호스를 집어넣었다. 뭉근한 감각의 물체가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는가 싶더니 멈추었다. 주사기 피스톤을 밀듯이 미는 느낌, 액체가 뿜어져 나가는 느낌, 그리고 팽만감이 느껴졌다. 점점 깊게 들어가는 것 같았고 그러면서 고통이 심해졌다. 온몸이 반응했다. 꽉 차는 느낌, 구역질... 나도 모르게 목, 어깨, 척추에 힘이 들어갔던지 간호사가 긴장을 풀라고 다독였다. 심호흡으로 몸과 마음을 달랬지만 눈물이 쑥 나오는 건 어쩌지 못했다. 머릿속엔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끝났다(할 때는 죽을 것 같더니 하고 나니 할 만하구나 하고 마음이 들었다. 참, 마음이라는 것은...). 끝나고 바로 내 몸속을 볼 수 있었다. 검사를 하면서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언제 찍었지? 나도 모르게!'). 내 눈으로 내 몸속을 확인하는 기분이라니! 성대의 모습, 위 벽의 살들. 돼지나 소의 고깃살과 별로 다를 바 없구나 싶었지만, 내 것이라서 그런지 대견(?)해 보였다. 속살은 다행히 건강해보였다. 겉모습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아 좋았다(내가 나이를 이렇게 의식하고 있었다니!). 역류성 식도염이라면서 거품처럼 보이는 액체와 흠집을 집어줬지만,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내 눈에는 내 선홍빛 속살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검진을 마치고 한 번 더, 여러 해 미루고 있던 일을 처리했다. 위층에 치과가 있기에 스케일링을 하겠다고 했다. 아름답지 않은 속을 보이는 것, 스케일링 특유의 소리와 시큰거림이 정말 싫었지만, 묘하게도 뭔가를 향해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쉬운 법이었다. 양복을 사면 넥타이 사는 건 일도 아니듯, 건강검진(내시경을 포함한) 후에는 평소 그렇게 단단하던 스케일링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사라지고 없었다. 주저함 없이 스케일링까지 마쳤다. 유쾌하지 않은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모든 게 시원했다.
하고 나면 별거 아닌 것을, 하고 나면 이렇게 개운한 것을, 그동안 미루고 미뤘다. 앞으로도 미루고 싶은 일이 있겠지만, 그것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때 이 말을 떠올리자고 다짐했다.
'해버리자,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