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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까 왜 그렇게 짜증을 냈지?
HIT 582 / 정은실 / 2009-05-11
저녁을 먹고 난 후에 숙제를 시작하던 아이가 짜증을 냈습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
어휘력을 늘리는 데에 도움이 되라고 2년 전에 시작했던 눈높이 한자 학습지를 막 펼친 후였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이제까지 했던 것들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이걸 공부해서 뭐하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면 공부 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거라고 말을 해주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괜한 잔소리를 했구나 생각하며,
정말 하기가 싫으면 다른 것부터 하라고 했더니,
아이는 한자 학습지 대신에 일기를 쓰고, 수학문제 풀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책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쉽게 쓸까 하며 어릴 때 읽었던 그림책을 다시 뒤적이는 아이에게
4학년에 맞는 책을 읽어보라며 ‘어린이를 위한 배려’라는 책을 골라주었습니다.
제법 분량이 많은 책을 인내심 있게 다 읽은 아이가
아까의 짜증이 싹 가신 얼굴로 내 옆에 오더니
“엄마, 배려에 관한 책을 읽고 나니 배려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랬습니다.
그리고 “아까는 내가 왜 그렇게 짜증을 냈지?” 하며 중얼거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많이 컸구나 싶어서 대견스러웠습니다.
짜증을 내는 어린 마음은 여전하지만 짜증나는 마음을 조절하는 힘이 생겼고,
무엇보다도 그런 자기 마음을 다시 돌아볼 줄 아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배려`라는 어려운 주제를 어린이들이 알기 쉽게 써놓은 그 책,
그 책의 어느 부분이 아이의 마음을 그렇게 풀어주었는지
나도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한참이 지나서야 내 작아진 마음을 알아차리곤 하는 나에게도
아마 그 책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와 같이 책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아이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주었는지 말입니다.